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일까, 결혼하기에 적합해서 선택하는 것일까. 오늘날 젊은 세대의 결혼은 사랑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적 조건들과 맞닿아 있다.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의 고민을 통해 사랑과 결혼,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글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사랑보다 먼저 찾아온 불안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우리 세대와는 사뭇 다른 그들의 사고를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접하지만, 그래도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마음이 설레고 예식 준비만으로도 바쁠 시기에 무슨 이유로 상담실을 찾았을까.
“불안해서요.”
“뭐가요?”
자신이 꿈꾸던 행복한 삶이 눈앞에 와 있는데 그녀는 왜 불안한 걸까. 상담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 지방대 재학 시절의 캠퍼스 연애와 동거, 이후 인서울 대학 편입, 과거를 지우기 위해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피나는 노력 끝에 대기업에 입사한 이야기. 그리고 승진을 거쳐 지금의 예비 남편을 만나게 된 과정까지.
“그런데요. 우리 정말 사랑한 거 맞을까요?”
그녀가 그 질문을 던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리’라면 지금 결혼하려는 남자를 말하나요?”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말하는 상대는 과거의 연인이었다. 이미 헤어진 사람인데 왜 그녀는 새삼 그 사랑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건 본인이 대답해야 할 문제이지요.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나요?”
“글쎄요. 저는 사랑이었다고 해도 그건 찌질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찌질한 사랑? 그럼 찌질한 사랑의 반대는 무엇인데요?”
“글쎄요. 음… 업그레이드된 사랑?”
그녀의 대답을 듣고서야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결혼의 정당성을 찾고 싶은 마음
그녀가 옛 연인과의 관계를 다시 떠올린 이유는 현재의 결혼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미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찌질한 사랑과 업그레이드된 사랑이라니.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자신을 팔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상품처럼 내놓고 있는 듯해 비참하다고 했다. 사랑보다 결혼이 중요하다는 확신은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당당함도 있었다. 다만 그런 자신이 초라하고 비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다운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에 대한 고전적인 가치관이 그녀의 자존심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선택에 대한 격려와 지지였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확신만큼은 필요했다. 다시 말해, 곧 하게 될 결혼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것이 없으면 계속 불편하고, 초라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결혼하려는 남자가 왜 좋은지 이유를 찾아보세요. 이러이러해서 좋다고 마음속으로 자꾸 되새기고,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려는 거라고 스스로 확신해보세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누구를 더 사랑했는지,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는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었다. 눈앞에 다가온 결혼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는 일이었다.
아픔에 동행하는 일
상담자는 내담자가 가져온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이란 아픔을 덜어주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상담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당신이 가진 욕망 안에서 그런 갈등과 조바심은 당연하다고, 당신의 입장에서는 힘든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상대의 욕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아픔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아픔에 동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고통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일이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최종 선택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본인이 하게 되어 있다.
사랑도 배워야 하는 시대
그녀에게 결혼 후 조금 여유가 생기면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이 있다. 김혜남의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한 걸까》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 사랑은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그 대목을 보여주며 이제부터라도 사랑을 키워 가보라고 넌지시 말했었다. 상담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씁쓸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은 “우리 사랑한 거 맞아요?”라고 묻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에는 타인의 인정도, 자기합리화도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원해서 달려가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감정 자체가 에너지가 되고 정당성이 된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사랑과 결혼 앞에서 끊임없이 정당성을 확인하려 한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긍정적인 확신이 있어야만 안심한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그들에게는 사랑조차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사랑도 배워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