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내 몸 eye

병원 밖에서 질병을 찾는 시대

24시간 생체 데이터가 여는
새로운 진단 혁명

건강검진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뇌경색이 찾아오고, 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부정맥이 집에서 드러난다. 과거에는 질병을 찾기 위해 병원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일상 속에서 질병의 신호를 발견하는 시대가 열렸다. 연속혈당측정기, 웨어러블 혈압계, 패치형 심전도 기기 등 24시간 생체 신호 모니터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의료의 무게중심이 병원에서 생활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건강상태를 특정 시점이 아닌 일상의 흐름 속에서 관찰하는 새로운 진단 패러다임을 살펴본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병원에서는 보이지 않던 질병의 신호

김모 씨는 건강검진 결과가 정상이었다. 혈압도 병원에서 재면 125/80mmHg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료진은 원인을 찾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김 씨는 새벽에 혈압이 180mmHg까지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박모 씨는 당뇨병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복혈당도 정상이었다. 그러나 팔에 연속혈당측정기(CGM)를 붙여보니 점심 식사 후 혈당이 200mg/dL로 치솟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당뇨병 전 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모 씨는 가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병원에서 심전도를 검사할 때마다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 가슴에 패치형 심전도 기기를 붙이고 일주일 동안 생활한 결과, 자는 동안 수차례 심방세동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뇌졸중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이 세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질병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처럼 질병이 발견되는 장소가 병원에서 삶의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혈압, 혈당, 심전도 같은 핵심 생체 신호를 하루 24시간,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사진 한 장이 아닌 몸의 전체 이야기

기존 질병 진단 방식은 특정 시점의 데이터를 본다. 하지만 병원에서 혈압을 재는 시간은 1분도 채 안 된다. 혈당검사도 채혈하는 순간만 반영한다. 심전도도 수십 초 동안만 측정한다. 문제는 사람의 몸 상태가 하루 종일 변한다는 점이다. 혈압은 잠잘 때와 아침에 다르고, 혈당은 식사에 따라 급격히 변한다. 부정맥은 하루 중 특정 시간에만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의료는 이러한 변화의 대부분을 놓쳐왔다. 마치 영화 전체를 보지 않고 사진 한 장만 보고 내용을 추측하는 것과 같았다. 24시간 모니터링 기술은 이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가장 먼저 대중화된 기술이 연속혈당측정기다. 팔에 동전 크기의 센서를 붙이면 피부 아래 조직액의 포도당 농도를 측정한다. 몇 분 간격으로 혈당이 기록되니 하루에 288회 이상 혈당을 측정하는 셈이다.

과거에는 당뇨병 환자가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많아야 하루 3~4회 검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혈당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혈당스파이크를 발견하게 됐다. 과거에는 당뇨병 진단 후 혈당을 관리했다면, 이제는 당뇨병이 되기 전 혈당 변화의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관리하는 시대가 됐다.

혈압과 심전도, 생활 속에서 답을 찾다

혈압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변하는 생체 신호로 꼽힌다. 아침에 상승하고, 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르고, 잠잘 때는 내려간다. 하지만 병원 혈압은 몇 분간 측정한 수치에 불과하다.

정상인은 잠들면 혈압이 10~20% 낮아진다. 이를 딥핑(dipp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 환자는 혈압이 거의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밤에 더 높아지기도 한다. 이를 야간 고혈압이라고 한다. 24시간 혈압 모니터링 없이는 발견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손가락 반지형 혈압계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해 수면 중 혈압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심전도 분야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부정맥은 매우 간헐적으로 발생한다. 병원에서는 정상이지만 집에서는 이상 소견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진단이 어려웠다. 이제는 심전도 패치를 붙이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부정맥 진단이 가능하다. 조기에 발견해 항응고제를 복용하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워치로 부정맥을 감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 와야 알 수 있었던 질환을 일상에서 미리 찾아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생활밀착형 의료와 AI가 만드는 미래

진단의 중심이 병원에서 생활로 이동하고 있다. 20세기 의료는 병원 중심이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21세기 의료는 다르다. 건강상태가 집과 직장, 침실, 운동장에서도 기록된다. 질병이 병원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드러난다. 이를 ‘생활밀착형 의료(Ambient Healthcare)’라고 부른다.

의사들은 오랫동안 청진기와 혈압계로 환자를 진찰해왔다. 앞으로는 데이터가 새로운 청진기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 일상 속 생체 데이터는 강력한 진단 도구로 발전한다. 혈당 급등 패턴, 심방세동 발생 전조, 혈압 이상 변화 등을 AI가 자동으로 분석하게 된다. 나아가 ‘3개월 내 당뇨병 위험 증가’, ‘향후 1년 내 심방세동 발생 가능성’, ‘야간 고혈압에 따른 뇌졸중 위험 증가’와 같은 예측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건강검진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건강검진은 1년에 한번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앞으로는 365일 건강검진 시대가 열린다. 한 번의 검사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찰이다. 과거 의료가 특정 순간의 몸 상태를 보는 ‘정지화면 의학’이었다면, 오늘날 의료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1년 내내 몸의 변화를 추적하는 '동영상 의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중증질환을 예방하며,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의료 혁명이 시작됐다. 의료의 무게중심은 병원에서 일상으로, 치료에서 예측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변화는 이미 우리 손목과 손가락, 팔 위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