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아픔은 혼자 견디기엔 너무 무겁다. 말하지 못한 상처들이 조심스레 오갈 때, 마음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집단상담이라는 공간에서 드러난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공감과 연민이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아가게 하는지 마주한다.
글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부대에서 ‘관심사병’이라는 용어로 분류된 사병 40명 정도를 12주 동안 만난 기억이 생생하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입대 전부터 가정환경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 부대에서 특별히 관리하며 상담·지도하는 사병들을 관심사병이라고 부른다. 입대 전부터 우리 사회 자체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로서, 사회가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어야 할 ‘관심 청년’들이다. 이들이 지닌 상처나 고민들은 내가 운영하는 개인상담소에서 만나는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부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획일적인 규율에 따라 생활하다 보니 조금 더 거칠게 혹은 기죽은 상태로 자기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모이는 곳
처음에는 선뜻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병이 거의 없었다. 각기 다른 부대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함께하는 집단상담이라 서로 얼굴도 모르고 생판 처음 보는 남이라 느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속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병들 간에도 조금씩 친밀감이 생겨났다. 사회의 상담 프로그램과는 의미가 다른 자리였기에 12주 차 마지막 날에는 후원자 역할을 자처한 지인의 도움으로 피자 10판과 통닭 20마리를 마련해 제법 떠들썩하게 유쾌한 ‘쫑파티’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간의 개인적 느낌과 변화된 마음가짐 등을 이야기 해자고 했다. 집단상담을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상호 피드백 자리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중에 A사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교수님이 가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힘들어요.”
“뭐가?”
“우리가 여기에서 아픔을 나누었다고 하지만, 결국 해결되는 건 없는 거잖아요? 변한 게 뭐가 있어요?”
‘변한 게 뭐가 있나요’라는 질문
상담을 통해 안정을 되찾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반박을 쏟아내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시간에 한 걸음 더 내면과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다.
A사병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하루도 편할 날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픔을 안고 있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엽총으로 어머니를 쏘려고 하는 것을 겨우 말린 적도 있었고 그 일로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A사병은 그 얼마 후에 입대했다. 상담 중에 A사병은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날 수 있어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남들에게 입대는 두렵고, 어떻게 보면 원치 않는 통과의례였지만 사병에겐 그것이 오히려 반가운 피난처였다.
문제는 집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동생이 있다는 점이었다. A사병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동생이 혼자 견딜 일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동생이 모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이대로 연락이 끊겨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피하듯 입대한 것에 죄책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자대에 배치된 후 거의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어한다고 부대의 대대장이 사전 정보를 준 적도 있었다. 나는 가만히 A사병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변한 게 있지. 너 스스로 말했잖아, 이제 좀 강해진 것 같다고. 그래, 넌 군에 오기 전보다 강해졌어. 석 달 후면 제대한다면서? 난 여기에서 힘든 시간을 무사히 마친 네가 대견해. 이제는 아버지 대신 네가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줘야지. 군에 오기 전에 네가 그토록 갈망했던 보호자가 이제는 너인 거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A사병이 다시 소리쳤다.
“다 필요 없어! 난 그냥 죽어버릴 거야. 동생을 지킬 자신이 없어.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어.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죽어? 남은 사람은 어떡하라고? 그렇게 걱정하던 네 동생은 어떡하라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 사병을 돌아보았다. 집단상담을 할 때에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닫았던 B사병이었다.
“너 그거 알아? 그렇게 가면 남은 사람은 정말 미친다. 우리 아버지는 우릴 두고 자살했어.”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났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였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가 하얗게 질려 선 채로 오줌을 싸고 울고 있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아무 말도 못 하더란다. 잠시 후 막내를 따라 욕실로 갔다. 거기에 아버지가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집안에 형제가 세 명 있는데, 가장 어린 막내가 그 모습을 처음 본 것이었다.
“난 우리 아버지를 용서 못 해. 부도날 수 있어. 망할 수 있어. 그치만 자기 혼자 그렇게 인생 정리하면 우린 어떻게 하라고. 우리 막내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 열다섯 살짜리가 정신병원에 있다고. 너 죽으면 네 동생 어떡할 건데? 죽으면 다 끝나냐?”
상처는 나눌 때 힘이 된다
나는 속으로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단상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하나됨. 서로의 상처가 하나로 섞여 위로하며 꾸짖고, 비판하며 연민한다. 누가 더 슬프겠느냐며 겨루는 게 아니라, 너의 아픔과 나의 아픔을 다 똑같은 상처로 바라보면서 서로 연민한다. 동정이 그저 ‘안됐어’ 하며 바라보는 측은의 눈길이라면, 연민은 깊은 이해로 함께하는 긍정의 시선이다. 그리하여 연민 자체가 정화 작용이 된다.
“고맙다. 네가 끝까지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 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어. 이렇게라도 네 안의 말을 해주어서 고맙고, 약해진 친구에게 네 상처가 힘이 될 것 같아서 또 고맙다. 부디 네 속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예쁜 여자 친구를 만나면 좋겠다. 그땐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바다로 떠나보내렴.”
슬픔의 경연장 같은 아픈 속내들이 상담 막바지에 새삼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은 상처가 힘이 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끝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연대감이 만들어낸 자리였다. 나는 또 한 번 우리네 삶의 저 무성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내는 연민과 공감의 힘을 믿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