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에 인공지능(AI)이 도입되면서 ‘보이지 않던 질병’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AI는 내시경·영상·검사 데이터를 통해 의사의 눈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 조기 발견의 가능성을 높인다. 건강검진은 이제 병을 찾는 단계를 넘어 질병을 예측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글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
“작년 건강검진 결과에 이상이 없었는데, 올해는 조기암이라고요?” 58세 직장인 A씨는 결과지를 들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점막에 5mm 남짓한 미세 병변이 포착됐고, 조직검사 결과는 ‘초기 위암’으로 판정됐다. 건강검진 의사는 ‘이번 검진에 AI 판독 보조가 들어가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변화였지만, AI가 위점막에서 미세 패턴 변화를 ‘이상’으로 표시했고, 그 지점을 집중 관찰하면서 암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건강검진에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내시경, 초음파, 유방촬영술, 흉부 X선, 심지어 심전도와 혈액검사까지. AI는 이제 의사의 ‘조수’를 넘어, 조기 발견의 레이더가 되고 있다. ‘건강검진 AI 진단 시대’가 온 것이다. A씨의 사례처럼, 위내시경 AI는 점막 표면에 나타난 미세한 색조 변화, 미세혈관 패턴, 주름왜곡 등을 수천만 장의 학습 데이터와 비교해 이상 신호를 표시해준다. 사람 눈에는 ‘그저 그렇다’고 보일 수 있는 부분이 AI에게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이상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일본, 중국, 한국에서 개발된 내시경 AI들은 조기 위암·식도암 탐지 민감도를 90% 안팎까지 끌어올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숙련된 의사의 눈과 AI의 ‘패턴 인식’이 결합되면서 조기암 발견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보고도 늘고 있다.
조기암 발견율을 높이는 AI
초음파는 검사자 의존도가 큰 검사다. 하지만 AI는 결절의 모양, 경계, 내부 에코, 석회화 패턴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위험도를 점수화한다. 덕분에 ‘애매한 결절’이 조기에 걸러진다. 유방촬영술은 이미 AI 활용이 가장 활발한 분야다. AI가 진단이 어려운 ‘미세석회화 내 암 의심’이라는 신호를 띄우면 그 추천에 따라 추가 검사가 이뤄진다. 유럽과 미국의 대규모 연구에서는 AI 단독 판독 혹은 AI+의사 이중 판독이 기존 단독 판독보다 암 발견율을 높이고 재검률을 낮춘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특히 질병이 가려지기 쉬운 치밀 유방에서 AI의 보조 효과가 크다.
흉부 엑스레이는 건강검진에서 기본이다. 하지만 작은 결절, 심장 뒤나 늑골 겹침 부위에 생긴 병변은 놓치기 쉽다. 이른바 흉부 엑스레이 판독 사각지대다. AI 흉부 X선 판독은 사각지대 판독은 물론 결절, 침윤, 기흉, 흉수, 심장비대 등을 빠르게 탐지해준다. 특히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응급실이나 검진센터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병변을 걸러내는 데 일조한다.
의사는 경험과 직관으로 판단하지만 AI는 수백만 장의 영상에서 추출한 패턴과 통계적 이상치를 본다. 사람은 ‘의심되면’ 확대하지만, AI는 미리 의심한다. 이 차이가 조기 발견을 만든다. 특히 내시경과 초음파처럼 검사자 의존도가 큰 분야에서 AI의 효과는 더 크다.
AI 진단이 도입되면서 위대장내시경에서 선종 발견율이 상승하고 조기암 발견이 늘어난다. 유방촬영술에서는 암 발견율이 증가하고, 가짜 양성은 감소한다. 흉부 X선에서는 작은 결절 검출률이 올라가고, 정상을 배제하는 판독 시간은 단축된다. 심전도에서는 무증상 심방세동이 발견되고, 심근병증 위험도 예측한다.
질병을 예측하는 검진으로
그렇다면, 이제 의사는 필요 없어질까? 아직 AI는 의사를 대체하지 않는다. AI는 의심 신호를 던질 뿐, 최종 판단은 의사 몫이다. AI는 의사의 눈을 더 예민하게 만들고, 판독 실수를 줄이며, 판독의 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는 AI 진단 한계와 논쟁도 있다. 임상적으로 의미 없는 병변까지 잡아내어 과잉진단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놓치거나 잘못 짚었을 때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AI 도입이 검진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도 AI 검진은 앞으로 ‘의사와 함께’ 쓰이며 확산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건강검진이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AI의 도움으로 질병을 예측하는 검진으로 거듭날 것이다. 단순히 병을 ‘찾는’ 수준을 넘어서,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다. 건강검진은 점점 ‘지금 병이 있나요?’에서 ‘앞으로 병이 생길 가능성은?’을 묻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질병 진단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혁신
현실적으로 AI 진단을 국민건강보험 급여로 공식 수가화할지, 환자가 부담하는 비급여로 둘지도 논쟁이 될 것이다. 이는 국가건강검진에 AI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소규모 건강검진기관이나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건강검진센터들이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AI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AI 진단에 지역 간 격차도 생길 것이다. AI는 잘 쓰면 의료 격차를 줄이는 도구가 되고, 잘못 쓰면 격차를 키우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건강검진은 이제 질병을 찾는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질병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건강관리 도구가 됐다. 그런 면에서 건강검진에 들어온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다. 질병 진단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혁신이다. 건강검진 혁신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