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건강증진

기술과 온기의 조화
인간 중심 의료 AI

오늘날 기술 발전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간혹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편리함과 정확성, 신속함의 가치에 매몰되어 누구를 위한 행위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박상민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낯선 병원 대기실에서 불안과 긴장 속에 시간을 보내다 진료실 문이 열리면, 의사 선생님이 환자보다 컴퓨터 화면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경험해본 모습이다.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우리는 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진 간 따뜻한 소통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편리함 뒤에 드리운 그림자

이 소통 단절의 시작점에는 전자의료기록 시스템이 있다. 종이차트에 환자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던 과거에 비해, 전자의료기록 시스템은 진료 속도와 정확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기술이다. 의료진 간의 정보 공유도 훨씬 원활해졌다. 하지만 그 편리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의사들은 환자와 눈을 맞추기보다 컴퓨터 화면에 집중해 기록을 작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고,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시스템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소외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진료실은 점차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최근 급부상하는 의료 AI도 비슷한 우려를 낳고 있다. 수백만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하는 AI의 능력은 분명 놀라운 성과이다. 그러나 의료진이 AI의 분석 결과와 권장 사항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환자는 자신이 단순히 수치나 데이터로 환원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를 약화하고,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치료의 만족도와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간 중심의 의료 AI

의학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환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돌보는 행위이다. 하버드 의대 프랜시스 피바디 교수가 말했듯이,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소통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넘어, 신뢰를 쌓고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며, 나아가 치료 성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중심 의료 AI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인간 중심 AI는 단순히 효율적인 데이터 분석 도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진이 환자와 더욱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다. 예를 들어, 다중 모달리티 AI는 환자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 목소리 톤, 몸짓 등 비언어적 신호까지 분석하여 의료진이 환자의 심리적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생성 AI는 방대한 환자 기록을 분석하여 중요한 정보를 미리 정리해 의료진이 환자와 대화할 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의료진은 AI의 도움을 받아 표면적인 증상이나 데이터를 넘어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상태와 심리적 상태까지 깊이 있게 질문할 수 있다.

투명성과 신뢰는 필수

인간 중심 의료 AI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신뢰성이 필수적이다. AI가 특정 결과를 도출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의료진이 AI의 권고를 신뢰하고 환자에게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역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들어야 비로소 진료 방향을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다. AI의 ‘결정’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납득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처럼 인간과 AI를 연결하는 ‘설명 가능한 AI’는 인간 중심 의료 AI의 핵심 기술이다.

인간을 위한 기술 발전이 우선

기술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의료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AI는 의료진이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더 집중하고, 더 깊이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여야 한다. 기술적 혁신과 인간적인 돌봄이 조화롭게 결합된 인간 중심 의료 AI만이 환자에게 더 나은 경험과 만족을 제공하고, 의료 현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효율성 증진을 넘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나가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