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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소일거리가 있어야
노후가 충만하다

“뭐? 은퇴 이후에도 일해야 한다고?” “은퇴했는데 뭐라도 하라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퇴 전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그러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과연 은퇴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가? 그럼 은퇴한 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는 실마리는 소일거리에 있다. 시간 보내기용 소일거리와 생산적 소일거리의 차이를 이해하고, 생산적 소일거리를 즐기면 노후의 캔버스는 다채로운 색상으로 채색될 것이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과거의 은퇴는 일에서 물러나 인생의 종착지까지 쉬어가는 기간을 의미했다. 그러한 이유로 과거의 은퇴자들은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은퇴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의미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은퇴 이전 현역 시절에 하던 일이 직업으로서의 일이라면, 은퇴 이후의 일은 소일거리로서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은퇴는 주된 직업 또는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은퇴 이전의 일이 생계유지에 초점을 두었다면 은퇴 이후의 일은 자아실현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오늘날에도 은퇴 이후에도 불가피하게 은퇴 이전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은퇴 이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한 일의 전선, 즉 생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은퇴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은 생업이나 그냥 놀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일을 추구한다. 이들에게 적합한 일이 바로 소일거리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일거리를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하는 일’이라 정의한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다. 요즘처럼 노후가 길어진 시대에 그 시간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소일거리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수입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되기도 하는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틀린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은퇴 이후에 하는 소일거리가 의미하는 바와 그 목적은 무엇일까?

은퇴 후 필요한 생산적 소일거리

은퇴 이후의 소일거리는 은퇴자를 사회와 연결하며, 긴 노후 시간을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 인생을 다채롭게 하고, 적지만 소중한 수입 창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은퇴자는 소일거리를 하면서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여전히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뿐 아니라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낀다. 이는 오늘날 노후의 소일거리가 단순히 시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소일거리를 생산적 소일거리라 정의하자.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존재하고 소일거리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소일거리를 하더라도 단순히 시간 보내기용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인생에 풍요로움을 더하는 양념으로 활용한다. 소일거리가 노후 인생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① 나를 즐겁게 할 것 ② 나를 끊임없이 발전시킬 것 ③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할 것. 여행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여행은 예비 은퇴자들이 은퇴 이후에 하고 싶은 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여행은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자 노후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상징한다. 그러나 같은 여행이라도 보상심리와 유희에만 초점을 맞추면 가성비 낮은 시간 보내기용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한 중년 여성은 여행 관련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저는 남편과 여행·일상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추억과 감사한 시간을 기록하며 보람을 느끼고 싶어요.” 이 여성은 남편과 같이 여행을 즐긴다는 점에서 노후 소일거리의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여행과 일상을 주제로 블로그 운영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을 만족한다. 여행 경험을 블로그에 글로 남기는 것은 글쓰기와 편집 등 창의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 블로그는 온라인에서 타인은 물론 자녀 등 함께 살지 않는 가족들과 소통의 장을 제공하므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해준다.

설렘과 성취감이 있는 노후

시간 보내기용 소일거리와 생산적 소일거리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의 벽에 막혀 시간 보내기용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이 한 장 차이를 가볍게 뛰어넘어 생산적 소일거리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소일거리를 찾기 어렵다면 자신의 취미를 생각해보라. 취미는 일반적으로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그 무엇을 말한다. 취미 활동을 하면서 일차원적 즐거움만 추구하면 시간 보내기용 소일거리에 머물 수 있지만, 나를 발전시키고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생산적 소일거리로 바꿀 수 있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소소한 수입을 얻기 위해 소일거리를 찾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지자체 노인일자리나 유급봉사, 지역아동센터 유급봉사,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조리사, 이야기 할머니, 파지 줍기 등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생산적 소일거리로 발전시키면 된다.

은퇴 이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외롭고 심심하다며 푸념하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자기학대에 익숙한 사람은 모여 앉아 뒷담화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생산적인 정치 얘기로 시간을 죽이며 인생을 축낸다. 긴 노후 시간을 자기학대로 보낼지, 설렘과 성취감으로 충만하게 할지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결코 어려운 선택이 아니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