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질문부터 눈물이 나려고 하네. 한 인생을 오롯이 살아봤어요." 배우 문소리의 요즘 일상은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평생 잊지 못할 훌륭한 작품이자,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시 돌려볼 드라마를 만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이야기다. 연기를 하는 이에게도, 보는 이들에게도 가슴 따뜻함을 안겨준 드라마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배우 문소리를 만났다.
글 남혜연 사진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으로, 제주에서 태어난 오애순(아이유 분)과 양관식(박보검 분)의 일생을 사계절에 걸쳐 그려낸 드라마다. 이야기는 1960년부터 2025년까지의 흐름 속에서 중년 오애순(문소리 분)과 중년 양관식(박해준 분)의 삶까지 조명한다.
주인공 애순이는 아이유와 문소리가 나눠서 연기했다. 10~20대 애순이는 아이유가,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진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애순이는 문소리가 맡았다.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동시에 딸과 어머니로 많은 교감을 나누며 한 인물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 문소리'는 그 어떤 역을 맡아도 문소리 아닌 캐릭터에 집중하며 작품에 힘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눈물 나는 연기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아이유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한 인물을 연결해서 연기하다 보면 뒤에 연기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부담감은 당연한 거였어요. 다만, 팬덤도 정말 크니까 혹시나 아이유에서 문소리로 넘어갈 때 팬들이 실망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정말 다행인 것은 캐스팅 기사가 나자마자 팬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아이유도 그 소식을 직접 전해줬어요. 그래서 첫 고비는 잘 넘겼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인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임상춘 작가의 탄탄한 필력을 믿고 연기했어요."
아이유와 애순의 감정을 교류하며 연기
문소리와 아이유는 배우로서 서로에게 애정이 있었고, 이와 엇나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배려하고 연구했다. 문소리가 연기하는 애순이 어디서 흘러나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아이유가 연기한 애순이 어떤 감정으로 흘러나왔는지를 서로 대화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일까. 문소리는 배우 아이유, 아니 이지은에 대해 극 중 애순이처럼 '정말 야무지다'고 말했다.
"그만한 딸이 어디 있나 싶어요. 해준 씨와 내가 금명이(아이유)와 촬영하는 날이면 항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휴, 누구 딸이야', '정말 잘한다' 같은 말을 하곤 했어요. 정말 야무지고, 똑 부러져요. 딸도 아이유 씨 팬인데, 정말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 같아요. 추석, 설날 같은 명절에 아이유가 보내준 고기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유가 보내준 고기다' 하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장준환 감독의 아내이자 10대 딸을 둔 엄마인 문소리는 이번 작품만큼은 온 가족의 반응이 궁금했다. 극 중 애순은 남편 양관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 아이유와 문소리가 작품 내내 머리에 핀을 꽂고 있는 것 역시 양관식의 애정 어린 표현이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질문 또 하나. '남편 장준환 감독은 양관식과 비슷한지, 그리고 이번 작품을 본 장 감독의 반응'이었다.
"박해준 씨의 리듬과 우리 남편의 리듬이 비슷해요. 두 사람이 성격은 다르지만 말도 천천히 하고, 쓱 와서 한마디 건네는 흐름이 닮았죠. 극 중에서 관식이가 '애순이 최고'라고 해주는데 그런 면은 남편과 조금은 비슷해요. 평소에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이 드라마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남편의 눈물을 봤어요. 굉장히 좋아했고, 임상춘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딸이 올해 14살이에요.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그 애에게 잔소리예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제로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기도 하니 고마울 따름이죠. 그저 딸은 엄마가 아이유와 함께 연기를 했다는 것에 감격스러워하는 중이죠."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배우로 남고 싶은 바람
마지막으로 문소리는 '넷플릭스의 장녀, 맏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 눈길을 모았다. 최근 극장가는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도 이 같은 현실에 극장용 영화만을 고집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제작 편수가 너무 줄었고, 제작되더라도 블록버스터 아니면 초저예산 독립영화밖에 없죠. 이런 상황이라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저도 생계를 걱정했을 것 같아요. 그런 변화 속에서 내가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다행이고요. 시대 변화에 적응해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