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친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관계의 한 축이다. 친구 없는 인생은 팥 없는 찐빵과 같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그럼 노후에는 어떨까? 친구 때문에 노후자금을 다 날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가 하면, 친구 덕분에 노후가 즐겁다는 사람도 있다. 노후에 친구는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고,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살펴본다.
글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작년 5월 충청도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은 소셜네트워크(SNS) 친구로 등록된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노후자금 10억 원을 날렸다. 일종의 SNS 투자사기를 당한 것이다. 휴대폰에 친구가 알려준 앱을 설치한 후 특정 계좌로 돈을 보내면 하루 평균 2.5%의 수익을 준다는 사기에 당한 것이다. 이 남성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500만 원을 친구가 보내준 특정 계좌로 보내니 실제로 하루 1.9%의 수익이 찍히는 것을 보고 거액의 돈을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SNS 친구니까 그렇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진정한 친구는 그렇지 않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은 알기 어렵다. 큰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돈 문제 때문에 친구 사이가 틀어진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필자도 친한 친구와 후배에게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빌려주었다 돌려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 이후의 일은 쉽게 예상하는 바와 같다. 관계는 서먹함을 넘어 연락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친구 중에는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친구도 많다. 노후에 술 한잔 나누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함께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가족들에게 하기 어려운 말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런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데 고민이 생긴다. 친구를 만나려면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 때로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럼 노후에 친구는 몇 명 정도 있으면 좋을까? 정답은 없다. 각자 처한 상황과 성격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있지 않을까!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은 친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가 인생의 큰 의미였다. 쉬는 날에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친구가 없었다면 삶이 텅 비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소원해지기도 한다. 친한 친구라도 연락이 귀찮고 만나도 즐겁지 않게 된다.” 정약용은 정말로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그런 정약용도 젊은 시절에는 친구에 흠뻑 빠져 지낸 모양이다. 1791년 어느 여름날! 몇몇 친구와 자그마한 모임을 하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갑자기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마른 우레가 은은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때 정약용은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났다. 세검정의 구경거리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하는 폭포 구경이라며 친구들을 다그쳐 세검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약용과 친구들은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한 수문 좌우의 산골짜기에서 비바람이 크게 일며 산의 물이 갑자기 정자로 들이닥치는 짜릿한 모험을 즐겼다. 이런 모험을 친구가 아니면 누구와 나누겠는가!
이런 정약용도 노후에는 한두 명의 친구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로 지낸 기간보다 가치관이 잘 맞는지가 중요해진다. 오래된 친구라도 가치관이 다르면 의미가 없고 새로운 친구라도 가치관이 비슷하면 깊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노후에 친구는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얼마나 교감을 잘 나눌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과거의 친구보다는 현재의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노후에도 인생은 유유히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나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며 우정을 다진다. 새로운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후를 풍요롭게 하는 친구
노후에도 친구 관계를 잘 관리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이어가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투자 제안이나 보증 부담을 주는 친구와는 즉시 관계를 정리한다. 둘째, 골프나 술자리는 월 1회로 제한하고, 회비는 5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셋째, 새로운 친구는 취미모임이나 봉사활동에서 만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노후에 건강한 친구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면 다음 5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정기적인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정하자. 시간과 장소의 정기성은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노후 시간에 계획성을 가져다준다. 타이트한 시간으로 짜인 젊은 시절에는 유연한 시간 활용의 가치가 높지만, 여유로운 시간이 넘쳐흐르는 노후에는 계획적인 시간 활용이 단조로운 일상에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둘째, 모임의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순히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모임은 오래가기 힘들고 공허할 뿐이다. 노후는 인생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시기이다. 그 시간을 성장과 떨림의 기회로 만들려면 목적이 명확한 모임을 해야 한다. 셋째, 서로의 경제적 상황을 존중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의 스타일에 맞춰 모임을 하게되면 그 모임은 오래가기 힘들다. 넷째,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자. 취미나 봉사 활동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이다. 어떤 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능숙한 반면, 어떤 사람은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때 서툰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면 안된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 진정한 우정이 싹튼다. 다섯째, 투자나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철저히 금한다. 돈 문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닌다. 노후에도 사람들은 돈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은근슬쩍 비집고 들어와 친구니까 말한다며 고수익 기회를 추천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