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혜교가 달라졌다. 신비주의 가득한 톱스타의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멋진 언니'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데뷔 30년이라는 세월이 말해주듯 한층 더 유연하고 푸근해진 배우 송혜교를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로코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던 그가 어느덧 ‘장르물의 여신’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으며 진화하고 있었다. 바로 영화 <검은 수녀들>을 통해서다.
글 남혜연 사진 uaa
영화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송혜교는 극 중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녀 유니아를 연기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유니아 수녀는 저라면 할 수 없는 강인한 선택을 하는 여성이에요. 수녀이기 전에 사람인데, 나는 저렇게 큰 결심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 점이 멋있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오컬트 장르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드라마가 더 강하다고 느꼈어요. 신념이 다른 두 여성의 연대가 멋졌고, 아이를 살린다는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이야기에 끌렸죠. 악령을 퇴치하는 구마신은 살면서 처음 찍었어요. 기존에 보지 않았던 모습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장르물의 여신으로 등극
장르물로는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에 이어 두 번째이며, 국내에선 2014년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0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송혜교와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노희경 작가조차 "이번 작품에서 <더 글로리>의 동은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또 다른 배우 송혜교였다"며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 멜로드라마에만 강한 줄 알았던 송혜교의 확장성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그는 이러한 말에 "사랑도 아픔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행복, 이별 같은 건 크게 보면 하나다. 비슷비슷한 캐릭터에 저도 보는 분들도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스스로 연기하면서 재미가 없는데 보는 분들은 당연하지 않겠나"라며 거듭된 도전의 이유를 밝혔다.
"어려운 건 흡연 장면이었어요. 제가 술은 마시는데 담배는 안피워요.(웃음) 몸에 안 좋은 것은 하나만 하자 생각했죠. 처음 대본을 보니 흡연 장면이 꽤 있었고, 거짓말을 하기 싫었어요. 첫 등장부터 가짜로 피운다고 생각하면 유니아의 모든 것이 가짜가 될 것 같았거든요. 주변에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있어서 촬영 들어가기 6개월 전에 시작했죠. 처음 피우니 목이 아팠고, 당연히 지금은 안 피워요."
친근한 혜교 씨로의 변신
또 다른 변화라면, '친근한 혜교 씨’라는 점이다. 아예 대놓고 노래를 부르더니 음원도 냈다. 지난해에는 23년 만에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며 예능 나들이도 했다. MC 유재석이 "23년 만이다. 주변에서는 다 그 얘기를 한다. 송혜교 씨가 재밌다"는 말을 하자, 송혜교는 "없는 편은 아니다"라며 재치 있게 응수했다. 송혜교는 이를 기점으로 다수의 유튜브에 출연해 어느 때보다 영화 홍보에 열을 올리며 인간미를 드러냈다.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했고, 10년 사이 홍보 방식도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어린 친구들에게도 다가가고 싶었어요. 제 작품을 안다면 <더 글로리>부터일 것 같아요. 2000년생 이후로는 유튜브로 SBS 드라마 <순풍산부인과>를 보고 저를 알기도 하더라고요. 시트콤은 다시 봐도 정말 재밌는데 제 모습은 못 보겠어요. 조금 통통하기도 하고, 패션이며 화장이며…. 보다가 '어휴' 싶었죠. 편안한 요즘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내친김에 음원까지 발매했다. 바로 엄정화의 '후애'를 커버한 것. 기교 없는 맑은 음색의 송혜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은 송혜교의 절친인 가수 강민경의 브이로그에도 공개됐다. 그는 "사실 술 한잔하다가 민경이 꼬임에 넘어간 것"이라고 했지만, 진지한 표정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말이다.
새로운 모습 기대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엄정화 언니를 좋아했어요. 촬영하기 며칠 전에 민경이와 정화 언니를 만났죠. '좋아하는 노래'라며 흥얼댔더니 민경이가 '그거다! 녹음하자!'라고 했어요. 전 취해서 '좋아' 했는데, 다음 날 바로 진행됐어요. 브이로그 그림과 노래가 같이 나오니 저도 좋았고요. 제 팬들은 더 울컥하는 것 같았어요. 정화 언니는 '나보다 더 잘 부르는 거 아냐?'라고 칭찬해줬죠."
그간 신비주의를 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옛날엔 다 이런 방식이었으니까. 송혜교는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며 새롭게 시작하는 요즘이 즐겁다고 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모습을 꺼내고 싶었죠. 앞으로 더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