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숱한 배우들이 연기해온 안중근이라는 역할은 현빈에게 도전이자 숙제였다. 무엇보다 영화를 대하는 진심,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었던 만큼 영화 <하얼빈>은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 개봉 즈음 매주 무대인사를 돌며 배우로서 작품에 대한 진심을 전하는 동시에 행복한 가정 생활과 사람 현빈을 솔직하게 보이며 한층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는 요즘이다.
글 남혜연 사진 CJ ENM
찾고 알아가고 고민한 시간들
영화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을 함께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와 우민호 감독이 다시 손잡았다. 또한 안중근-현빈,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이 독립군으로 의기투합했고, 일본군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박훈, 독립군들의 자금과 거처를 지원하는 최재형-유재명, 그리고 안중근과 갈등을 겪는 독립군 이창섭을 연기한 이동욱이 힘을 더했다.
"작품과 역할을 처음 제안받고 미팅했을 때가 생생해요. 우민호 감독님과는 첫 작업인데, 작품에 대한 감독님의 진심과 제대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뿜어져 나왔거든요. '이분과 작품을 하면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죠. 물론 고민도 굉장히 많았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뜻깊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하고 좋더라고요. 촬영을 진행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는데, 감독님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동작 한 컷 한 컷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에 나도 완벽하게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커졌어요."
결과적으로는 현빈 스스로 납득할 만큼 '잘한 선택'이 됐다. 준비과정부터 촬영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성이었던 것. 또한 그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하얼빈>에 대해 말했다. 압박감과 무게감이 컸고 외롭고 힘들었던 과정이었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안중근 장군님이 쓰신 글과 남아 있는 서적으로 그분의 행적을 찾는 것이었어요. 준비하고 촬영하는 7~8개월 동안 최대한 많은 자료를 보고 공부하면서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찾고 알아가고 고민하는 시간의 반복이었죠".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
한류스타로서의 부담감은 없었을까. 이 작품을 결정한 뒤 많은 이가 "괜찮겠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빈은 아내 손예진과 결혼 전에 촬영한 tvN <사랑의 불시착>이 큰 인기를 모으며 팬덤이 확장됐기 때문. 하지만 배우로서 착실하게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온 터라 이런 질문 자체가 그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작품 스토리는 우리나라의 아픈 기억이고, 그런데도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기록이고, 배우로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되게 감사한 일이잖아요. 거사를 치르러 가는 안중근 장군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 고뇌와 좌절, 슬픔 등 여러 감정이 분명 있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목표 달성을 위해 걸어가야만 했던, 지키려 했던 신념과 의지 등을 많이 표현하고 싶었어요."
특히 이번 작품 홍보에선 아내 손예진의 역할도 컸다. VIP 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손예진이 남편의 작품 홍보를 자처한 것은 물론 정성스런 손글씨로 '꼭 봐야 할 영화'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현빈 역시 이러한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고 방송이나 유튜브 인터뷰에서는 한층 더 적극적으로 손예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모았다. 특히 <하얼빈> 촬영 당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얘기를 꺼내면서도 "아마 제가 계속 촬영하고 있으니까 와이프(손예진)도 외로웠을 것"이라면서 "작품 특성상 쉽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끝나고 나서 와이프가 '고생했어, 수고했어'라고 말해주어 큰 힘이 됐다.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표현해준 것이 참 좋았다"는 말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나이가 들고 가정과 아이가 생기면서 제가 봐도 좀 달라진 것 같아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변화되는 것들이 지금 보이는 게 아닐까요? '결혼 후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도 해요. 지금도 연기는 늘 조심스러워요.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면 적정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는 것 같아요. 또 영화를 보고 '나라면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뛰어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쉽지 않은 선택이죠.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해요.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에요. 어떤 지점이 됐든 나은 미래가 되어야 하죠.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