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물리학상은 딥러닝과 인공신경망 기술 개발, 노벨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개발에 수여되었다.
이번 노벨상은 전통적인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아니라 AI 기술과 이를 활용한 연구자들에게 수여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AI가 과학계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재 AI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글 박상민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덕분에 의료 AI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를 능가하는 정확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료 AI는 기술적 변화의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1세대 의료 AI:
확률적 모델과 규칙 기반 시스템
초기 의료 AI 기술은 확률적 모델과 규칙 기반 시스템에 의존했다. 확률적 모델은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 발생 확률을 계산하거나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규칙 기반 시스템은 전문가의 지식을 전산화해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건강검진의 심뇌혈관 위험도 평가를 들 수 있다. 비만, 흡연, 음주, 운동,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바탕으로 계산된 심뇌혈관질환 발생 확률과 심뇌혈관 나이가 제시되며, 개인별 안전·주의·위험 등급을 건강 신호등 형태로 알기 쉽게 표시하고, 그에 적합한 전문가의 건강관리 권고를 제공한다.
확률적 모델과 규칙 기반 시스템은 이해하기 쉽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 현재도 의료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1세대 의료 AI 기술은 복잡한 의료 데이터를 처리하기 어렵고, 정확도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2세대 의료 AI: 딥러닝
딥러닝의 도입은 의료 AI의 한계를 극복하며 2.0 시대를 열었다. 딥러닝의 가장 큰 특징은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는 능력이다. 초기 규칙 기반 시스템이, 사람이 정의한 규칙에 따라 작동했다면, 딥러닝은 데이터를 통해 숨겨진 정보를 능동적으로 탐색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
딥러닝 기술의 발전은 의료 영상 분석, 유전체 데이터 분석, 환자기록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성능을 크게 향상했다. 2세대 AI는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 모델을 생성하며, 이를 기반으로 질병 진단, 예후 예측, 치료 방법 추천 등에서 인간 전문가에 버금가는 성능을 보인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며 질병 진단을 지원하는 대부분의 AI 시스템은 2세대 의료 AI에 속한다. 그러나 딥러닝 모델은 특정 데이터세트에 과적합되기 쉬워 새로운 데이터에 대한 일반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작업을 학습할 때 기존 정보를 잊어버리는 ‘재난적 망각(Catastrophic Forgetting)’ 현상을 보인다. 이로 인해 특정 작업에 최적화된 딥러닝 모델은 다른 여러 작업에 유연하게 활용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3세대 의료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생성 AI
최근 파운데이션 모델, 다중 모달리티 AI, 생성 AI의 도입으로 의료 AI는 3.0 시대로 접어들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전에 훈련된 대규모 AI 모델이다. 기존 AI 모델이 특정 작업에 특화된 것과 달리, 파운데이션 모델은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잠재력이 특징이다. 생성 AI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며, 다중 모달리티 AI는 의료 영상, 의무기록, 혈액검사, 유전자 정보, 생체 신호 등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해 풍부하고 더욱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을 도출할 수 있다.
의료 AI 3.0 기술은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제공한다. 자연어 처리기반의 질의응답 기능을 통해 의료진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고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다. 복잡한 의학 용어를 쉬운 언어로 변환해 환자에게 설명하거나, 실시간 질문에 답변하고 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챗봇을 통해 환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또한 의료기록 자동화로 의료진의 행정 업무 부담을 줄이며,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 보고서를 생성해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이해하고 관리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의료 AI는 확률적 모델과 규칙 기반 시스템을 활용한 1세대에서 딥러닝 기반의 2세대를 거쳐, 현재는 파운데이션 모델, 생성 AI, 다중 모달리티 AI를 중심으로 하는 3.0 세대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3세대 의료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의료 분야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혁신적인 잠재력을 지닌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의료 AI는 앞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물론, 질병 예방과 발생 가능성 예측, 개인의 특성에 최적화된 맞춤형 건강관리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료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