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자서전에서 자식과는 말로 하기엔 애매한, 뭔가 껄끄러운 점이 있지만, 손주에겐 무한한 내리사랑만 존재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가 바로 손주라는 것이다. 손주와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식과의 관계가 돈독해야만 한다. 자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글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노후에 자식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자식에게 버림받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노후에 자식에게 버림받는 것은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요즘 부모와 자식이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륜이 이어준 관계에는 의지의 영역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 쓰고 죽자’고 외치며 자식과 독립적 관계를 선언해도 자식과의 관계가 뒤틀리면 진정한 독립이라기보다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자식과의 돈독한 관계는 부모의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손주를 거쳐 대대손손 이어지는 가문의 전통을 나누는 디딤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간추려 살펴보자.
첫째, 경제적인 독립 유지
자식이 독립을 한다는 건 거주지의 분리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자식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 비로소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일구게 된다.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나이 들어 경제활동을 중단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이때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의지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은 부모는 없다지만,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원하지 않더라도 자식 된 도리로 자식이 그렇게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원하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재무적으로 체계적인 노후 준비를 하거나 돈 없이도 잘 사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부모가 돈이 많아도 문제는 발생한다. 상속이나 재산 분배를 둘러싸고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들 간에 볼썽사나운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은 모두 돈 때문이다. 요즘 액티브 시니어들이 ‘다 쓰고 죽자’고 외치는 것은 이런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심리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도 안 되지만, 자식도 부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서로 힘들 때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도 있으나, 때론 그것이 서로의 독립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후에 접어든 부모와 성인이 된 자식 모두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냉정한 판단속에 따뜻한 정이 싹틀 수 있다.
둘째, 소통의 중요성
자녀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가족 간의 문제는 대부분 소통 부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카터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자식과는 무언가 껄끄러운 점이 있어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 모두 서로에게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이 자주 얼굴을 비춰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랑스런 손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주변 지인들에게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은 한창 바쁘게 일할 나이일 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 교육과 배우자 집안도 함께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만큼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런 말을 꺼내면 못난 자식이라 비난받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한편 자식은 부모가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길 은근히 바란다. 특히 자식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고, 배우자의 눈치에 시달리다보면 자연스레 부모와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러한 장벽을 뛰어넘으려면 서로의 기대와 요구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절, 생일 등 자녀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대화하는 집안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화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의 생각을 툭 터놓고 말하는 것에도 서툰편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다가는 껄끄러운 현상 유지를 넘어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질 뿐이다.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3분 스피치라는 게 있다. 각자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관심사, 생각들을 3분 동안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할 수 있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현재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셋째, 자신만의 생활 유지
노년기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노년의 부모가 생기 없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자식은 없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에 안쓰러움은 있을지언정 존경심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부모는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는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남이나 사회를 비난하는 말보다는 배울 점과 개선점을 찾아 자식이나 손주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야 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일을 할 때 자부심을 가지는 법이다. 반드시 돈 버는 일이 아니어도 된다. 무언가를 가꾸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취미를 개발해 즐기거나, 자신의 재능을 지역사회에 베푸는 일 등 찾아보면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이런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눈에는 따스함이 가득하고, 그의 자식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자신 있게 늘어놓을 수 있다. 자신만의 생활을 유지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이는 자식과의 소통에도 활용할 수 있다. 자식이 방문하거나 자식 집에 갈때 맛난 먹거리만 준비하지 말고 이야기보따리도 함께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