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에 걸쳐 노후에 시간이 빠르게 가는 까닭과 노후에 시간관리가 필요한 이유를 살펴봤다. 이번 호에서는 노후의 시간관리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역 시절의 시간관리가 같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노후의 시간관리는 지루하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역 시절과 은퇴 이후의 노후생활은 시간관리의 목적이 다른 만큼 접근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글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노후 시간관리의 목적은 ‘지루하지 않게’와 ‘의미 있게 보내기’ 두 가지다. 현역 시절에는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낮에는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오더를 처리하느라 지치고, 퇴근 이후에는 온갖 집안일에 녹초가 되고 만다. 현역 시절의 시간이 누군가의 지배하에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노후생활의 시간은 스스로의 통제하에 조절하는 시간이다. 현역 시절에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쥔 자라면, 노후생활의 시간을 지배하는 자는 행복을 움켜쥔 자로 남을 공산이 크다. 오랫동안 익숙한 시간과 그 속성이 다른 시간을 통제하고 조절하려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10년 가까이 준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과 나름 행복한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 관련 도서와 영상 매체 등에서 습득한 필자만의 노하우 세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나만의 일정표 만들고 실천하기
첫째, ‘느슨한 스케줄의 습관화’이다. 노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래서인지 노후의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여기면서도 지루함의 포로가 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시간의 덫에 빠지지 않고 더욱 활력 있는 노후를 보내려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은 뭘 할지 고민하는 것만큼 소모적인 노후는 없다.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스케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역 시절처럼 빽빽한 일정으로 가득 찬 스케줄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일정은 육체적으로 고단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떨어진다. 느슨한 스케줄을 짜는 방법은 하루를 ‘오전-오후-저녁’으로 3등분한 뒤 이것을 일주일 단위로 작성하는 것이다. 가령 월요일 오전에는 가벼운 산책 또는 트레킹을 하고, 오후에는 근사한 커피숍에서 책 읽기, 저녁에는 배우자와 월화드라마 시청하기 등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거주지 여건과 취향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만들면 그다지 어렵지 않고, 느슨한 일정이므로 지키기도 쉽다.
나만의 일정표는 언제든지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휴대폰 속 일정관리 앱에 기록해두면 좋다. 일주일 일정표를 2주, 한 달간 계속 사용해도 상관없다. 다만 매주 한 번쯤은 일정표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바꿀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자 주변을 관찰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는 공간 만들기
둘째, ‘새로운 공간 만들기’다. 우리의 삶이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듯 노후의 시간도 공간을 따라 흘러간다. 즉, 공간은 시간이 흘러가는 통로이다. 아무리 느슨한 일정표라도 그것을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과정일 수 있다. 이의 가장 큰 이유는 움직일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동할 공간이 부족하면 집 안에 박혀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에는 분명 제약이 따른다. 집 안에만 있다 보면 가장 친숙한 TV의 노예가 되기 쉽다. TV 리모컨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할 일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동가식서가숙해서는 곤란하다. 더욱 활력 있는 노후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간의 50% 정도를 바깥에서 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갈 곳을 생각하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타인과의 관계를 몇 개 만들어야 한다. 노후설계에서 흔히 말하는 자원봉사 활동 참여하기,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참여하기, 동호회 활동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 물론 나 혼자 바깥에서 할 수 있는 활동도 상관없다. 하지만 나 혼자 하는 활동의 영역이나 시간이 많아지면 외로운 늑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것이 습관화되면 아집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양한 견해를 표출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은 나만의 세계에 갇히는 우를 줄여주고 세상으로 열린 마음을 강화해준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만큼 낟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집이라는 노년의 암덩어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타인과 쌍방향 소통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의 폭을 넓혀야 한다.
노후에도 열려 있는
발전과 성장의 길을 찾아서
셋째, ‘나만의 충만한 시간 보내기’다.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려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반추의 시간과 나에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성장의 시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공간 만들기’가 육체적 활동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나만의 충만한 시간 보내기’는 정신적 활동에 초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독서, 여행, 산책, 식물 기르기, 취미 활동 등을 적절히 활용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노후는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이것이 인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후에도 얼마든지 발전과 성장의 길은 열려 있다. 나만의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왕성한 뇌 활동을 의미하며, 이는 노년에 가장 두려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자녀와 손자녀 등 후손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일종의 종합영양제나 다름없다.
위에 거론한 세 가지 방법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서로 연결될 때 더 큰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새로운 공간 만들기’와 ‘나만의 충만한 시간 보내기’가 알차면 ‘느슨한 스케줄의 습관화’는 훨씬 쉬워진다. 일정표를 만들기가 쉬워지고, 이를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노후가 지루하거나, 의미 없이 흘러가는 뜬구름 같을 수는 없다. 느슨한 일정표는 새로운 공간과 나만의 충만한 시간이 둥지를 트는 안식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