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간’과 ‘췌장’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발견했을 때는 질병이 많이 진행되어 치료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침묵의 끝에서 무방비 상태로 암을 맞이해야만 하는지,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글 김진욱 한국건강관리협회
부산서부지부 영상의학과 전문의
간, 우리 몸의 센터 장기
전 세계적으로 K-pop 붐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그룹에서 뛰어난 비주얼과 재능을 모두 갖춘 멤버는 ‘센터 멤버’라고 불리며 그룹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도 아이돌그룹의 ‘센터 멤버’처럼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는 장기 중 하나가 ‘간’이다. 체내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은 무게가 약 1,500g이고 오른쪽 늑골에 싸여 횡격막 아래 복강 내에 위치해 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간은 생명 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 우리 몸의 에너지를 저장하고, 다른 필요한 물질로 가공해 온몸의 세포로 분배하며, ‘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호르몬·비타민·무기질 대사에 관여한다. 둘째, 몸에 들어온 약물이나 알코올, 기타 독성 물질을 분해하고 대사하는 해독 작용을 한다. 셋째, 담즙을 만들어 지방의 소화를 돕는다. 넷째, 독소나 세균에 대한 면역반응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대장점막을 통해서 혈액에 흡수된 균은 간을 거치면서 대식작용(균을 잡아먹는 기능)을 하는 쿠퍼세포에 의해 소멸되고 1% 미만의 세균만 간을 통과할 수 있다. 간경변증 환자는 이 기능이 저하되어 각종 세균에 감염되기 쉽다.
숨겨진 장기, 췌장
췌장은 상복부 중앙을 가로지르며, ‘위’의 뒤에 위치해 ‘십이지장’과 연결되며 ‘비장’과 인접해 복강 내 어느 장기보다 깊숙이 숨어 있는 장기이다. 전체 길이는 15cm, 무게는 100g이라 ‘간’과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췌장은 음식물 중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외분비 기능’과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과 글루카곤 등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능’을 가지고 있다.
왜 ‘침묵의 장기’로 불릴까?
간 실질 내에는 신경세포가 매우 적기 때문에 종양이 생겨도 통증을 느끼기 어려워서 신경이 많은 간의 피막에 종양이 침범한 후에나 복부 불편감 등 통증이 나타난다. 증상이 나타날 즈음엔 간 전반에 걸쳐 손상이 진행된 상태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장기간에 걸쳐 손상되기 때문에 회복하기 어렵다.
췌장도 다른 장기에 둘러싸여 종양이 생기더라도 자각증상이 없고, 복통, 황달, 식욕부진, 체중감소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초기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 막연한 상복부 통증이나 불편감, 소화장애 등 일반적인 증상들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간혹 허리와 등 통증으로 척추센터를 찾았다가 췌장암을 발견하는 환자도 있다. 지난 봄, 등 통증을 호소하며 척추 MRI를 촬영하고자 본원에 방문한 내원자가 직원의 권유로 췌장 MRI를 촬영하여 췌장암을 발견한 사례가 있다.
발병률보다 사망률이 높은 간암과 췌장암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83,878명이며 전체 사망자(372,939명)의 22.4%를 차지했다. 그 중 간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암 사망자 중 12.2%(10,212명)로, 사망률 2위였으며, 췌장암이 8.8%(7,325명)로 4위를 차지했다. 발병률이 갑상선암, 대장암, 폐암, 위암, 유방암, 전립선암, 간암, 췌장암 순인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6~2020년 췌장암 질환의 건강보험 진료 현황을 보면 2020년 기준, 췌장암 질환은 60대 남성이 32.3%(3,466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췌장암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이며, 특히 70대 이상 고령에서 타 연령대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비만·당뇨병 인구의 증가, 흡연 인구의 증가, 고령인구의 빠른 증가 추세와 영상학적 진단이 보편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한간학회/국립암센터 권고안을 보면 간암은 다음과 같은 경우 발생 위험이 특히 높기 때문에 추적검사를 권고한다.
남자 30세, 여자 40세 이상으로 아래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자
-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질환
-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질환
- 지방간, 알코올성 간염
- 여러 원인에 의한 간경변증
- 이 외 만성 간질환 환자, 간암 가족력이 있는 환자
정기적인 검진을 통한 관리가 해답!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 속담이 무색하게, 간암과 췌장암은 일상생활 속 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 정기적인 검진이 선행되지 않으면 예방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증상이 발현될 즈음엔 암이 이미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후회해도 늦다. 간암의 원인 중 가장 큰 요인이 간염으로 인한 간질환이기 때문에 A형· B형 간염항체 여부를 혈액검사에서 확인하고 항체가 없다면 예방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다. C형 간염은 예방백신이 없고, 혈액이나 분비물 혹은 성관계로 전염되는 만큼 평소에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칫솔이나 면도기 등 위생용품은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 좋다. 췌장암도 평소에 소화장애가 있어서 위·대장 내시경을 해도 특별한 소견이 없는데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당뇨병이 악화됐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간암과 췌장암 예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검진은 상복부초음파라고 할 수 있다. 상복부초음파는 간을 비롯해 췌장, 담낭, 비장, 신장 등 배 안 장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방사선 피폭이 없고 비교적 간단한 검사라는 게 장점이다. 간암은 상복부초음파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췌장은 상복부초음파나 일반적인 복부 CT검사만으로 정확히 진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상복부초음파는 장내에 공기가 많거나, 비만이 심하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조영제를 투여하여 촬영하는 복부조영 CT검사, 췌장 MRI검사 등 정밀검사를 추천한다.
암이 사망선고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많이 전이된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지속적인 추적검사와 치료를 통해 생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향하는 현재, 현명한 건강관리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김진욱
· 한국건강관리협회 부산서부지부
영상의학과 전문의
·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
· (전)부산지방검찰청 의료자문위원
· (전)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