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츠 5060 라이프

5060 라이프

사물에 집중하는 정신적 활동
산책

괴테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맑은 정신으로 지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괴테는 이렇게 답했다. “산책을 즐기기 때문이라네. 산책은 육체보다는 정신에 많은 도움이 된다네.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의 모든 사물을 사랑스럽게 보고 관심 있게 보면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되지. 산책은 사고를 넓혀주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네.” 우리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주는 산책, 어떻게 하면 될까?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괴테의 말을 빌리면 ‘걷기’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는 육체적 활동이고, ‘산책’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사물에 집중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걸음을 걷는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 발로 걷는 행위는 먹는 행위처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젖줄이다. 특히 산책은 특별한 준비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행위다. 출퇴근길에 걷는 것, 점심 식사 후 사무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행위, 저녁에 집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도 산책이 될 수 있다.

산책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이다. 그는 작품집 《산책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집 주변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나는 자주 산책을 나갔고 숲의 아름다움, 경이로운 겨울 숲의 고독을 경험하다 보면 막 시작된 내 절망도 치유되는 것 같았다. 나무 꼭대기에서 이룰 말할 수 없이 다정하게 나를 향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세상이 온통 힘들고 허위이고 악의적이라는 어두운 생각에 빠져 있으면 안 돼. 그럴 때면 우리를 찾아와. 숲은 항상 너를 좋아하니까. 숲과 함께 있으면 기운을 차리고 건강해질 거야. 그래서 다시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될 거야.’라고.”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산책이야말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내 경험에 따르면 발저의 주장은 상당히 신뢰할만하다. 나는 지천명의 계단에 오르려는 순간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강제퇴직 때문이다.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울 때 여러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았지만,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세상도 그에 못지않은 위안을 주었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돌멩이 하나도 나름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메마른 땅 위를 힘겹게 전진하는 지렁이의 행위에도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작은 돌멩이에도 존재 이유가 있다면, 강제퇴직으로 인생계단에서 중요한 50대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나가떨어진 나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선택한 게 프리랜서의 길이었고,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프리랜서의 길은 가볍다면 가볍다고 할 수 있는 산책이 나에게 준 큰 선물이었던 셈이다.

산책은 만남이자 소통과 교감의 통로

발저는 <산책>이란 중편소설에서 “원래 산책을 할 때는 여러 가지의 번쩍이는 발상이 번개처럼 동시에 떠올라 한꺼번에 마구 밀려오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어느 작가는 수영할 때 떠오른 생각을 붙들어두려고 수영장에 갈 때마다 항상 노트를 지참했다고 한다. 나도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붙잡아두려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한다. 가끔 그 단편적인 생각으로 한 편의 글을 짓기도 한다. 퇴직 초기에 산책을 할 때면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나갔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그 때만큼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산책은 세상 모든 것과의 만남·소통·교감의 통로이다. 그냥 어슬렁거리며 걷기보다는 주변의 사물을 보며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외부의 사물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산책은 한창 일할 때의 젊은이는 물론 세상사에서 한 발짝 물러난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이와 관련해 장 자크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생애의 말년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연구하고, 나에 관한 결산서를 작성하는 데 바칠 것이다. … 매일 반복되는 한가한 산책의 시간은 종종 매혹적인 명상들로 가득 차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명상들을 기억해낼 수가 없다. 다만 앞으로 하게 될 명상들만큼은 글을 통해 남겨 놓으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되어줄 거다. 내 마음이 받아야 할 상을 생각하면서, 내 불행과 나를 박해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받은 치욕을 잊으려 한다.”

정신과 육체 건강에 좋은 산책

노후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화와 노욕이다. 화를 잘 내는 노인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욕심을 부리는 노인도 마찬가지다. 화와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정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때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순간순간 떠오른 생각을 메모장에 기록하거나, 그 장면을 사진 또는 영상으로 남기면 훌륭한 나의 기록유산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 게 힘든 사람들은 녹음으로 남기면 된다. 이렇게 쌓인 기록들은 주기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순간적인 생각이 확실한 나의 정신적 토양이 된다.

산책이 위대한 인물들에게만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산책이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투자 대비 효과가 좋은, 즉 가성비 좋은 생활 방식이다. 등산할 땐 이것저것 챙길 게 많지만, 산책은 일상생활의 연장선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산책은 육체적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야외에서 진행되는 산책은 신체를 햇볕에 노출함으로써 비타민D의 생성을 돕고, 온갖 질병의 주범이라는 스트레스를 팍팍 줄여준다. 산책하면 체내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