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츠 토크

드라마계의 괴물 신인
설경구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았지만, 결국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시작했다는 배우 설경구.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으로 30여 년 만의 드라마 출연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설레는 마음을 전한다.

남혜연 사진 넷플릭스

1994년 KBS TV소설 <큰언니> 이후 3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지상파가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지만, 오랜만에 또 다른 매체에서 자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데 따르는 고민의 흔적도 역력했다.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어떤 현장이든 매 작품 긴장이 되죠. 특히나 초반에는 엄청 긴장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드라마 환경에 선입견이 있었고요.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똑같지만 이 많은 대사량을 어떻게 소화할까,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죠. 드라마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겁을 먹기도 했고요. 주변에서도 쉽지 않을 거라고 해서 걱정을 했죠. 결국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한다고 했어요.”

설경구의 걱정과 달리 <돌풍>은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자연스럽게 설경구는 ‘드라마계 괴물 신인’이라는 귀여운 애칭까지 얻었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배우 설경구는 '돌풍'을 몰고 왔다. <돌풍>은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 분)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 분)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설경구는 박동호 캐릭터를 “때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저돌적이고 또 상대를 압도하는 전략가의 모습, 친구의 죽음에 고뇌하는 모습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면서 “또 그만큼 부담스러운 인물이기도 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박동호라는 인물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잘 쓰여진 대본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본에 충실하고 더 집중하고자 했다”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길

또 <돌풍>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입소문을 타며 국내 넷플릭스 TV쇼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배우 설경구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만큼 배우들의 호연과 짜임새 있는 연출력의 효과를 그대로 증명해 ‘K-정치 드라마’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찍고 나서 후회는 안 했어요. 현장은 다 똑같구나 싶었죠. 한마디로 재미있었던 현장이었어요. 사실 매 현장, 매 작품 긴장되는 건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새 작품 초반에는 특히 엄청 긴장하죠.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는 다 같이 밥을 먹는데 드라마 현장에서는 따로 먹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 두 시간씩 걸리고 해서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했죠. 시간이 아까웠어요. 하루에 소화해야 할 분량이 많았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눈치 보여서 한 번만 더 하겠다는 말을 잘 못 하겠더라고요. 그건 좀 아쉬웠어요.”

설경구는 박동호 캐릭터를 구축하며 참고한 인물은 없다고 한다. <킹메이커> 때는 그 시절 유튜브를 찾아보며 현실을 벗어나서도, 무시해서도 안 되니 특유의 몸짓 같은 걸 흉내 내보려고도 했다. <나의 독재자>에서는 김일성 대역이라 자료를 보고 손에 집중해 포인트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돌풍> 속 박동호는 누구도 연상되지 않아서 백지인 상태였기에 연기할 때 몸짓도 많이 하지 않고 버티는 느낌으로 했단다. 얼마만큼 그 인물에 빠져들고 고민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아마도 해석은 보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SNS를 하지 않아서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잘 몰라요.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죠. 다만 행동반경이 좁긴 하지만요. 지금 촬영하는 작품이 있는데 거기서 반응을 확인하곤 합니다. 20대 중반 여성 스태프가 ‘재밌게 봤다’고 해서 너무 반가웠죠. 고마워서 ‘그럼 쉬어도 돼. 일하지 마’라고 했어요. 하하. 정치적인 이야기인 만큼 논쟁이 있을 순 있겠지만 시리즈를 보고 나서 정치를 넘어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존재 자체로 든든한 동료들

그는 함께 연기한 배우 김희애와 김미숙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희애는 극 중 조력자였다가 한순간에 반대편으로 돌아서며 끝없는 갈등 구조를 팽팽하게 그렸다. 또 김미숙은 조력자로서 처음과 끝을 같은 마음을 안고 가는 인물이었던 만큼, 두 배우와 연기할 때 다양한 감정선이 오갔을 터. 세 배우 모두 연예계에선 어느덧 '대선배' 혹은 '선생님' 소리를 듣는 위치였던 만큼, 모처럼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끼리 연기하는 즐거움도 있었을 듯했다.

“김희애 씨는 42년 차 배우예요. 나이는 저와 같은데 10년 정도 먼저 시작했죠. 그의 옛날 모습은 모르지만, 똑같았을 것 같아요. 진짜 열심히 하더라고요. 대본을 외운다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숙지했어요. 베테랑의 여유로움보다도 ‘저렇게 열심히 한다고?’ 싶을 정도였죠. 극에서 싸울 때마다 압도하고, 압도당했죠. 매 순간 혈투였어요. 김미숙 선배님은 존재 자체로 든든했어요. 드라마 환경에 익숙하고 마음이 넓은 분이죠. 보조출연자가 역대급으로 많은 작품이었는데 모두 친밀하게 지냈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