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HECK 60

한국건강관리협회의 뿌리
한국기생충박멸협회

한국건강관리협회의 전신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는 1960년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절실했던 ‘기생충 박멸’의 사명을 띠고 출범했다.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요소인 기생충 감염을 막아 전 국민의 건강 증진에 앞장서고자 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1964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기생충 0% 달성’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한국기생충박멸협회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우리나라는 사회적 혼란과 함께 많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콜레라, 천연두,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이 홍수처럼 밀려와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넣으며 목숨을 앗아갔고 흡충류인 간 디스토마와 회충, 촌충 등 기생충 감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한국기생충박멸협회는 이러한 건강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거리로, 학교로, 직장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기생충 박멸에 앞장섰다. 1970년대에는 전국적 규모의 기생충관리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본 해외기술 협력단(O.T.C.A)의 지원과 일본 만국박람회의 재정적 지원, 국내 정부 및 학계의 도움을 바탕으로 우수한 시설을 갖춘 전국적 조직체계(13개 시·도지부)를 조성했다.

사업적 측면에서도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 근로자 등에 대한 기생충 구제사업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으며, 1971년부터는 5년마다 전국 장내기생충감염률 실태조사를 실시해 국민의 기생충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를 통해 전국 장내기생충 감염률이 1971년 84.3%에서 2012년 2.6%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전국 학생기생충 감염률도 1970년 76.8%에서 1995년 0.2%로 감소하는 업적을 세웠다.

"한국은 토양매개성 기생충의
퇴치에 성공한 국가"

WHO, 2001

건협, '기생충왕국'의 오명을 벗기다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기생충 박멸 0% 운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발족한 것은 1964년 4월 21일이었다. 그로부터 기협은 기생충의 박멸을 위해 거리로, 학교로, 직장으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다. 무료검사, 무료투약. 무진장한 살포였다. 지금 40대라면 누구나 선생님 앞에서 큰 물주전자를 하나 놓고 산토닝이라는 벌레약을 한 움큼씩 얼굴을 찡그리며 먹었던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몸속에 기생충이 거의 없는 국민이 되어, 건강과 체력의 향상을 함께 움켜쥐게 되었다.

의사신문 1985.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