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
인지예비능 부자 되기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을 꼽으라면 이구동성 치매라고 답한다. 치매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고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뇌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은 뭘까?
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인지예비능이라는 개념이 있다. 근력으로 설명하자면 겨우 걸을 정도의 근력이 있는 사람은 폐렴으로 며칠만 누워 있어도 일어나기가 어렵고, 근력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이 어려워지니 더욱더 기능이 나빠진다. 하지만, 근력의 여유분(예비능)이 충분한 경우는 금세 다시 일상적인 신체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걸을 수 있는 최소 근력과 현재 근력의 차이를 예비능이라고 한다(그림 A).
마찬가지로, 평생 다양한 방법으로 몸과 머리를 사용하여 인지기능을 지키면 인지예비능이 높아 상당히 많은 아밀로이드 병변이 뇌에 쌓이고 뇌가 많이 쪼그라드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능적으로는 치매를 앓지 않는다. 뇌의 통장 잔고라고 생각해도 좋은데, 이 통장 잔고를 풍부하게 채워두면 노화나 질병으로 어쩔 수 없이 뇌 기능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 상황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평생 뇌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가 치매 발병이나 뇌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지도와 주소를 외워야 하는 런던 택시기사들의 해마가 버스기사들의 해마와 비교할 때 커져 있음을 보고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그래서 인지적으로 부담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아리조나 대학의 로스 앤델(Ross Andel) 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을 관리하거나 상담 또는 접대 등 사람과 접촉하는 일, 정보를 수집·분류·분석하는 일 등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직종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생률이 평균 22% 낮았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미 장·노년기에 접어든 분들은 이제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특히 뇌는 한번 고장이 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통념이 있다. 뇌와 신경이라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뇌경색 등으로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그 조직 자체가 큰 폭으로 재생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뇌는 신경 가소성(plasticity)이 있다. 이는 새로운 정보나 경험에 노출되면 새로운 연결성이 생기거나 기존의 연결성이 변화·강화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을 토대로 인지예비능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기존 연구를 종합해보면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인지적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면 인지기능이 개선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통한 신체기능 향상과 비슷하게 인지예비능을 개선하는 과정 역시 불편하고 힘들지만, 습관화해서 꾸준히 하면 결국 큰 폭으로 개선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익숙한 패턴의 일상생활을 반복한다. 로봇청소기가 같은 경로로 청소하기를 반복하면 점차 청소기가 다닌 경로만 반들반들해지고, 그 바깥에는 먼지가 쌓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두 가지 운동만 계속하면 관절 가동 범위가 제한되며 몸의 협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평소에 잘하지 않던 인지 관련 활동을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서구 연구자들이 주로 인지 활동으로 분류하는 것으로는 독서, 컴퓨터 사용, 보드·카드 게임, 마작, 토론 참여, 글쓰기, 서예 및 그림, 수공예, 악기 연주, 주식 투자 및 도박 등이 있다. 하지만 인지예비능이 굉장히 다면적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는, 우리가 해야 하는 활동에서 크게 다음 세 가지의 균형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그림. 신체기능의 예비능 개념(A)과 비슷한 인지예비능(B)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의 균형
인지기능 감퇴 속도를 느리게 하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은 유산소 운동이다. 이는 뇌에 풍부한 산소 공급을 보장하며, 신체기능을 개선하고 노화와 연관되는 모든 만성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걷기,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을 하면, 정신적으로 각성도를 높여주는 도파민을 비롯한 카테콜아민이 분비된다. 운동할 때 나오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를 비롯한 여러 물질이 뇌 기능을 개선해주기도 한다.
댄스는 균형, 협응 등 머리를 잘 써야 하는 매우 동적인 활동이며 인지적 효과가 크다고 잘 알려져 있다. 댄스는 복잡한 움직임과 리듬, 그리고 공간 인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뇌의 여러 부분을 동시에 자극한다. 댄스는 큰 운동신경을 사용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정적인 활동으로는 방에서 서예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아주 미세한 운동신경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창의력과 감성을 자극한다. 회화, 서예, 조각 등의 활동은 집중력을 향상하고, 창의적 사고를 개발하며,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혼자 집중하는 활동과 상호작용하는 활동의 균형
인지예비능을 증진하는 데에는 개인이 혼자서 집중하여 수행하는 활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활동도 큰 역할을 한다.
혼자서 집중하여 수행하는 활동, 예를 들면, 퍼즐을 맞추거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 등은 개인의 집중력을 향상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활동은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며, 뇌의 신경 연결성을 강화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감정적 뇌 영역을 자극하며, 이는 인지예비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를 나누거나 그룹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사회적 기술을 향상하며,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또한 우리 뇌에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제공하며, 인지예비능을 증진한다.
수동적인 활동과 능동적인 활동의 균형
인지예비능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동적인 활동과 능동적인 활동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수동적인 활동, 예를 들어 음악 감상은 뇌를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TV시청 같은 수동적인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있다. 반면, 능동적인 활동, 예를 들어 연주나 조각, 노래, 요리 등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활동은 뇌의 신경 연결을 강화하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며, 인지예비능을 높이는데 강력한 도움이 된다.
신체기능과 마찬가지로, 인지예비능을 보호하고 향상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활동과 노력에 달려 있다. 두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양한 인지적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이러한 자세에 기반한 꾸준한 인지활동은 오랜 시간 우리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의 뇌를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이 편안하고 나에게 익숙한 뇌 활용의 영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사, 운동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 관리가 더해지면 분명 인지예비능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