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곱다. 배우 박보영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정직하고 정확하지만 사려 깊고 다정하게 말하는 그와 대화를 해보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어느 한구석도 모난 부분 없게, 동글동글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박보영은 자신의 성정대로 곱지만 단단하게 자기만의 길을 다져가고 있다.
글 정유진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너무 출연하고 싶었어요
여름 영화 ‘빅4’의 대미를 장식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문명의 멸망 그 이후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건물, 황궁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황궁아파트 602호 민성(박서준 분)의 아내이자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명화를 연기한 박보영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 손석우 대표의 사무실에서 접했다. 막 소속사를 옮기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시나리오를 읽고 마지막에 덮으면서 ‘이거 너무 하고 싶은데 이미 캐스팅이 다 끝난 건가요?’ 물어봤어요. 참여할 수 있는지 여쭤본 거죠. (손석우) 대표님이 ‘이런 장르도 좋아하는구나’ 하시길래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저한테는 잘 안 주시더라고요’ 했었죠. 저는 이런 작품을 좋아하고 이런 캐릭터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늘 있었어요.”
명화는 박보영이 지금까지 표현했던 캐릭터들과 결이 다르다. 동화속에서나 볼 법한 착한 소녀가 아니며(늑대소년) 귀신을 보지도 않고(오 나의 귀신님) 힘이 세지도 않다(힘쎈여자 도봉순). 기존 캐릭터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박보영 특유의 매력과 시너지를 낸 역할들이었다면, 명화는 한 톤 낮은 목소리로 소신 가득한 직구를 던진다. 박보영이 보여주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목소리다.
“‘민폐 캐릭터’라고요?(일부 관객들은 올곧은 명화의 캐릭터를 이렇게 불렀다.) 전 명화 같은 캐릭터도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명화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했어요. 제가 본 어떤 리뷰 중에 그렇게 써주신 게 있었어요. ‘명화가 이 영화의 유일한 숨 쉴 구멍’이라고요. 그 문장이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이처럼 명화를 많이 좋아했지만, 정작 ‘인간 박보영’과는 다른 점이 많아 연기할 때는 적잖은 도전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병헌 선배 연기에
감탄하다 찾아온 슬럼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여러모로 박보영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너의 결혼식>(2018)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인 데다 ‘이병헌’이라는 영화계 큰 산과 함께 연기하는 기회도 얻었다. 극 중 이병헌이 맡은 영탁과 대립 관계를 형성한 탓인지 박보영은 영화를 찍는 내내 그렇게 선배가 어렵고 무서웠다고 했다. 오죽하면 엄태화 감독이 이병헌을 ‘갈치’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하라고 디렉션을 줄 정도였다.
“왜 갈치라고 하셨을까요?(웃음) 그때 점심 메뉴로 갈치가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병헌 선배님과 대립하는 중요한 신을 앞두고 휴대폰 배경 화면을 선배님으로 해두고 노려보는 연습을 했어요.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죠. 실제 첫 테이크를 찍을 땐 정말 쫄았어요.”
이병헌의 연기를 옆에서 목도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보고 있으면 감탄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연기에 대한 고민이 끝도 없이 깊어졌다. 좌절감을 많이 느꼈던 시간이다.
“선배님 덕분에 일기장이 온통 ‘나는 왜 이렇게 모자란 인간인가’, ‘배우란 저런 사람이 배우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안구를 갈아 끼울 수 있나?’, ‘나는 예열이 필요한 사람인데 선배님은 예열도 필요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하실까?’ 같은 문장으로 가득했어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슬럼프도 왔죠. 전 선배님처럼 매일 연기가 잘되지 않아요. 어느 날은 벽에 부딪히기도 하거든요. 이 표정 말고 다른 표정은 없을까? 2%가 부족한데 뭘까? 하면서 찾는 과정이 있고요. 그런데 늘 정답인 것 같은 사람의 바로 옆에서 작업하다 보니 제가 너무 부 족한 사람인 것만 같았어요.”
그래도 슬럼프를 생각보다 빨리 벗어났다. ‘나는 이병헌이 아니야’라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그는 웃었다.
귀엽고 상큼한 ‘로코퀸’,
벗어나고 싶었냐고요?
배우들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는 이미지의 고착화일 것이다. 성공을 가져다줬던 캐릭터와 이미지가 때때로 걸림돌처럼 여겨지는 것. 박보영 역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 안에만 갇혀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꼈다고 했다.
“예전에는 아쉬웠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싫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요. 예전에는 원래 제 모습을 다르게 꾸며내려는 게 있었어요. 원래 말투가 애교 있는데 다들 그렇게 봐주시니 일부러 안그러려고 노력했고요. 하지만 요즘엔 튀어나오면 튀어나오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지금 목표는 최대한 ‘동그랗게 커지기’다. 인간으로서는 있는 그대로의 박보영을 지키되, 배우로서는 가능하면 다양한 장르의 작품, 다양하게 변주가 가능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성장하고 싶다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이미 목표에 또 한 걸음 가까워진 셈이다.
<건강소식> 독자에게 한마디
이너 뷰티로 피부건강 챙겨요~
유난히 고운 피부가 눈길을 끄는 박보영은 몸속부터 건강해야 피부도 건강하다고 말한다. 물을 자주 마셔 피부 속 수분을 채우고 꾸준한 운동으로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 맑은 피부를 유지한다. 수분 섭취가 말처럼 쉽지 않아 오전에 한 번 텀블러에 물을 담아 전부 마시고, 오후에 또 한 번 담아 전부 마시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는 충분한 수분 섭취로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피부와 건강을 동시에 지키는 것이 비결이라고 귀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