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뱀파이어급 동안’을 자랑하는 배우 송승헌. 그에게 “10년 전과 같더라”는 후배 김우빈의 칭찬을 전하자 ‘립서비스’라며 손사래를 쳤다. 얼굴은 변하지 않았지만 연기는 꾸준히 진화해온 그는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에서 SF 시리즈물의 안타고니스트까지 다양한 역할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29년 차 배우 송승헌의 롱런 비결을 들어봤다.
글 정유진 사진 넷플릭스 제공
‘흑화’한 젠틀맨, <택배기사> 류석
멜로드라마 속 따뜻한 순정남, 송승헌이 달라졌다. 지난 5월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에서 그는 사막화된 미래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로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의 대표 류석을 연기했다. 공기 정화 기술로 잡게 된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류석은 주인공 5-8(김우빈 분)과 사월(강유석 분)이 뛰어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류석의 대사 중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세상은 없다’는 대사가 있어요. 현실에서 모든 것에 만족할 수는 없죠. 그런 대사처럼 류석이 처한 현실에서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었어요.”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택배기사>의 연출자는 송승헌 주연 영화 <일단 뛰어>(2002)의 연출자이기도 했던 조의석 감독이다. 76년생 동갑내기 감독과 배우가 무려 20년 만에 한 작품으로 재회했다.
“조의석 감독은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할 만큼 오래된 친구예요. 둘 다 20대 파릇파릇한 청춘 때 만나서 신인 배우로, 데뷔하는 감독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빨리 다음 작품에서 만나자 했던 게 20년이 됐네요.”
사적으로도 20년간 절친한 관계를 이어온 친구이기에, <택배기사>의 촬영 전날 송승헌은 잠을 못 잘 정도로 설렜다. 마지막 촬영후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찡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조의석 감독이 작품을 얘기한다면 어떤 역할이어도 좋다고 했어요. 오랜만에 함께할 수 있다면 뭐든 좋으니 얘기해달라고요. 촬영할 때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죠.”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데 세대 차이라뇨
<택배기사>는 배우 김우빈의 주연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송승헌은 후배 김우빈을 두고 “너무 인간미가 없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뭐라고 할까, 너무 완벽해요. 사실 조의석 감독이 <마스터> 촬영 때 얘기를 했었어요. (김)우빈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현장에서 만나기 전에 우연히 같은 식당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우빈이가 제게 인사를 하러 왔어요. 조의석 감독님께 형님 얘기 많이 들었다면서요. 굉장히 예의가 바르더라고요. 우빈이에 대해서는 나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현장에서도 남자답고 기본적으로 정말 ‘멋진 놈’이었어요.”
<택배기사>로 함께 한 김우빈, 강유석 등 후배들은 송승헌 선배가 <택배기사>의 분위기 메이커였다면서 선배의 배려와 센스에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함께하며 세대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송승헌은 “나이 차가 별로 안나는데 무슨 세대 차이냐”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줬다.
“조의석 감독 자체가 말이 별로 없어서 재미가 없어요. (김)우빈이도 그렇고 사월이 유석 씨도 쉬는 시간에 크게 얘기들이 없어서 그 분위기에 제가 농담을 한 게 그나마 웃음을 준 것 같네요.(웃음)”
‘승헌 오빠’가 팬클럽 회장 결혼식에
깜짝 참석한 썰
1995년 스톰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송승헌은 올해로 벌써 29년차 배우로, 머지않은 시일에 배우 생활 30주년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송승헌은 문득 최근 다녀온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어렸을 때부터 제 팬이었고 팬클럽 회장까지 했던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어요. 저를 보려고 교복 차림으로 사인회장, 촬영장에 달려온 친구인데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준 거예요. 다행히 그때 촬영이 없어서 몰래 결혼식장을 갔어요. 팬의 결혼식을 간 건 처음이었죠. 신부 대기실에 갔는데 그 친구가 너무나 놀라더니 갑자기 울려고 했어요. 오빠가 와준 것에 대한 놀라움, 고마움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너무 창피한 건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는 거예요.”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송승헌은 그때 무척 마음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묘한 감정이었죠. 20년 전에 교복 입고 왔던 꼬맹이 친구가 이제 결혼을 하고, 저도 나이가 들고. 이게 뭐지? 여동생을 결혼시키는 오빠의 감정이 이런 감정일까 싶더라고요.”
결국 30년 가까운 시간을 배우로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사랑 덕분이었다는 이야기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요. 20대, 30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시간이 막 흘러갔는데, 지금까지도 찾아와주는 오래된 팬들을 보면 제 자신을 반성하고 채찍질하게 되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건강소식> 독자에게 한마디
제 몸이 건강해야죠
많은 사람이 송승헌의 변하지 않는 외모에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송승헌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말에 따라 건강관리에 항상 힘쓴다며 스스로 생각하는 동안 비결에 대해 설명했다.
“스필버그 감독이 ‘좋은 영화를 찍으시는 비결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대단한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제 몸이 건강해야죠’ 하더라고요. 많이 공감했어요. 저도 몸이 재산이라 생각해요. 연기는 제가 해야 하는 것이고, 잘하려면 건강해야 하니까요. 담배는 20년 전에 끊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하고 비타민 같은 기초적인 영양제도 챙겨먹어요.”
기본을 지키는 건강 관리가 송승헌의 가장 큰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