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녀는 만족을 모른다.
반찬가게 집 사장님으로 청부살인회사의 에이스 킬러로.
2023년 상반기 그 누구보다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전도연을 만났다.
글 정유진 사진 넷플릭스
“많이 믿지 않았어요. 이게 어떤 이야기가 될지. 엄마와 딸 이야기를(남자에 싱글인) 감독님이 알기 어렵잖아요.” 처음 변성현 감독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고 얘기했을 때 전도연은 그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의심했다. “내가 볼 때 복순이 캐릭터가 이상한 것 같다며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러더라고요. ‘선배님이 그러세요.’ 제가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죠.(웃음)”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젊은 감독과 일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를 재밌게 봤기에 그 영화들을 만든 감독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변성현 감독은 길복순이라는 캐릭터에 자연인 전도연이 조금씩 녹아들도록 설계했다. 식물을 좋아해 집 안에 온통 식물이 가득한 것도, 딸의 이름이 재영인 것도, 친구 같은 엄마인 것도 실제 전도연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뿐만 아니라 ‘복순’이라는 이름은 전도연 이모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변 감독이 전도연의 휴대폰에 뜬 ‘복순이모’라는 이름을 보고 주인공의 이름을 ‘복순’으로 정해버렸다고.
“이모가 너무 영광이라고 하셨어요.(웃음) 신기해하고 계세요.”
‘전도연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에 쾌감
<길복순>을 통해 전도연은 액션 영화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특유의 악바리 정신 때문에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액션에 매진한 그는 액션 영화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손사래 쳤다.
“그때 만든 등 근육은 이미 사라졌어요.(웃음) 연기 인생 처음으로 식단 조절을 했어요. 등 근육을 만들려면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해야해서 술도 안 마셨죠. 액션 연습은 4개월 조금 넘게 했고요. 감독님은 기대도 안 하셨던 것 같은데 보시고는 만족하셨던 것 같아요. 또 액션 영화요? 지금으로서는 액션은 충분히 한 것 같아요.”
여왕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길복순>은 칸,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히는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스페셜 부문에 초청받아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완성도를 인정받았고, 공개 이후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TOP3(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라 대중성도 증명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액션 장르에서 킬러로서의 모습, 그걸 또 다른 전도연의 모습으로 보실 때 쾌감이 컸어요. 베를린에서도 <밀양>에서처럼 사실적인 연기를 하다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는 반응이 있어 뿌듯했거든요.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어요.”
변신의 귀재 전도연의 진가는 지난 3월 종영한 tvN <일타 스캔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학원의 일타 수학 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귀여운 로맨스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그는 어린 조카를 딸처럼 키우는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출신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을 연기했다.
“시청자분들이 저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일타 스캔들>을 꼼꼼히 모니터하면서 알게 됐어요. 이것이 제가 스스로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하단 걸요. 이런 작품을 오래 기다렸던 것 같아요.”
<일타 스캔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닐슨 코리아 기준)이 17.0%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전도연은 딸 재영이의 친구들이 사인을 받아 가기도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유퀴즈’로 재회한 대학 동기 유재석
최근 전도연은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많은 시청자가 서울예대 동기인 ‘국민 MC’와 ‘칸의 여왕’의 재회를 기다렸다. 유재석이 1991년 KBS 대학개그제 참여할 당시 객석을 비춘 카메라에는 동기를 응원하는 앳된 전도연의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전도연은 방송에서와 같이 이번 인터뷰에서도 “유재석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일관된 주장을 펼쳐(?) 웃음을 자아냈다.
“옆에서 녹화하는 내내 그저 신기했어요. 보시는 분들이 절 보고 ‘왜 저렇게 선을 그어?’ 하실 수도 있는데 친구이긴 했지만 안 친했던 친구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색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방송에서 전도연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경험한 업계의 편견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작품성 있는 작품에만 출연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고, 그것이 한동안 그를 깊이 고민하게 했다. 다행히 올해 선보인 두 작품으로 그런 고민은 어느 정도 해갈됐다.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나서 제가 작품성 있고 진지한 작품들만 할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조금 이야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전도연이 하겠어?’ 하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계속 많은 작품을 하고 싶었기에 누군가가 깨주길 바랐고, 스스로도 깨려고 했어요. ‘전도연이 이런 것도 해?’ <일타 스캔들>과 <길복순>을 보면서 배우로서 저를 보시는 감독님들의 시각이 더 넓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를 기대하고 있어요.”
＜건강소식＞ 독자에게 한마디
빨리 걷기는 나만의 루틴
50이 넘도록 한결같은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는 전도연. 그에게는 아주 오래된 건강 루틴이 있다. 바로 매일 한두 시간 빨리 걷기다. 결혼 전에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결혼 후에는 한강 둔치에서 매일 걷는다고 한다. 촬영으로 촬영장에 머물 때도 매일 아침 걷기 루틴은 계속된다고. 남는 시간엔 필라테스도 즐겨한다. 연기를 하다 보면 몸이 경직될 때가 있는데 필라테스는 근육을 풀어주고 유연성 향상에 도움이 돼 걷기와 병행하는 그의 운동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