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만남

세월도 연기한다
이성민

존경받는 의사였다가 무서운 상사도 됐다가 어느 때는 독재자의 얼굴로, 또 어느 때는 자수성가한 재벌 총수의 얼굴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남자. 시대와 나이, 직업을 넘나들며 매번 인생 연기를 경신하는 연기파 배우 이성민을 만났다.

정유진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재벌집 막내아들>,
이제 잔잔해지지 않았나요?

배우 이성민을 만나 가장 먼저 꺼내게 된 것은 역시나 그 드라마 얘기였다. 드라마 얘기에 이성민은 “<재벌집>은 이제 잔잔해지지 않았나요? 요즘에는 한 달이면 딱 끝나던데”라면서 수줍어했다. 그는 지난해 말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굴지의 대기업 순양그룹의 회장 진양철을 연기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회귀물’로 장르의 매력과 폭풍 같은 전개에 힘입어 최고시청률이 무려 26.9%(닐슨코리아)에 달했던 ‘초대박 히트 드라마’였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를 중심에서 견인한 것은 재벌집 막냇 손자 진도준(송중기 분)과 단맛과 짠맛을 오가는 케미스트리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 추상같은 할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분)이었다.

“인기를 실감하느냐고요? 아니오, 전혀.(웃음) 그래도 <재벌집>은 방송 때 실감이 났던 건 맞아요. 난리가 났었죠. 내가 드라마를 처음하는 배우도 아닌데 사람들이 막 연락이 오고 하더라고요. 특히 업계 관계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그렇지만 그때 저는 ‘이 또한 한달도 못 가 끝나리라’ 했어요. 진짜로 눈 깜빡하니 끝났고요.”

이성민의 진양철 캐릭터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이유는 배우가 자신의 실제 연령대를 훌쩍 뛰어넘는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올해 55세인 이성민은 극 중 진양철의 60대부터 70대까지를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성민이 노인 연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민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리멤버>에 이어 올해 3월 개봉한 <대외비>에서도 노역을 선보였다.

조진웅은 굵은 동아줄, 나는 가는 나일론 줄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대외비>는 조진웅과 이성민, 김무열까지 충무로 굵직한 남자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 범죄 영화다. 이성민은 조진웅과 함께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외비>를 선택했다고 여러 번 얘기한 바 있었다.

“그의 연기가 나를 설레게 만들어요. 진웅 씨랑은 나이가 조금 차이가 나는데, 저와 배우로서의 궤적이 비슷해요. 진웅 씨는 부산에서 활동했고 저는 대구에서 활동했어요.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방송이나 영화를 시작했었죠. 소위 무명으로 작품에 출연해 만났고, 같이 성장했고, 광고도 한 번 함께 찍었고요.”

이성민은 자신과 조진웅의 연기를 비교하며 “조진웅은 굵은 동아줄 같은 연기를 한다면, 나는 약간 가는 나일론 줄”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나도 굵은 동아줄이 되고 싶은데… 그런데 그건 그냥 본성이에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저 제가 갖지 못한 부분인 거죠. 그런 배우들이 부럽기도 하죠. 그런데 배우라는 것, 연기라는 것은 결국 서로를 인정하는 게 시작이라 생각해요. 세상에는 존재하는 배우 수만큼의 연기 방법, 그만큼의 캐릭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굵은 동아줄 배우를 만나든, 쇠사슬 배우를 만나든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와 진짜 나, 이제는 구분하죠

사람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이성민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육체는 쇠잔해지나 정신은 한층 성숙해진다. 그는 과거에 비해 지금의 자신이 훨씬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나이 들면서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이런 인터뷰 자리도 힘들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버거웠거든요. 요즘엔 많이 달라졌는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배우 이성민과 배우가 아닌 이성민, 두 명을 나누려고 했다면 이제는 그 둘이 하나가 된 느낌이에요. 어릴 때는 역할과 나를 애써 구분하려고 버둥거렸죠. 나이가 드니 점점 나에 대해서 알아가요. 내가 어떤 목소리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캐릭터와 나를 확실하게 구분해나갈 수 있게 됐어요. 예전처럼 억지로 그런 척하지 않아도 구분이 돼요. 그래서 요즘엔 예능도 재밌어요. 잘 받아들여요.”

세 명의 노인 역할을 끝내고 난 이성민은 더 이상의 노인 역은 없다며, 이제 70대, 80대 역할은 충분히 나이가 든 다음에 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며칠 전 촬영을 하다가 20년 전 과거 신이 있었어요. 이제는 젊음을 연기하는 것도 힘드네, 싶더라고요. 목소리 톤도 달라야 하고 자세도 바르게 해야 하고, 뛰는 것도 잘 뛰어야 하고. 나이를 먹으며 제 나이에 어울리는 배역을 맡게 돼요.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는 것에 순응해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무거운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젠 경쾌한 역할을 해야겠단 생각도 했어요. 이젠 힘든 거 말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지···.”

<건강소식> 독자에게 한마디

기초체력으로 버팁니다

50대 중반이지만 군살 없는 몸매를 유지하는 이성민은 운동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촬영할 때 뛰거나 체력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아직까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 정도의 기초체력은 갖추고 있다. 배우로서 더욱 성장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려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요즘은 관리도 하고 기초체력을 더욱 기르려고 한다. 술을 안(못) 마시는 것도 이성민이 체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