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에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에 세 번 마주하는 식탁 위에도 지구를 살릴 방법이 있다. 바로 채식이다. 환경을 위해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채식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정리 편집실
채식과 환경의 상관관계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파괴와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소 한 마리가 하루에 배출하는 메탄가스 양은 소형차 한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온실가스 양과 비슷하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3%가 교통수단에서, 18%가 축산업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축산업을 위해 아마존을 비롯한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이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채식이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식량부족을 해결할 방법,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다.
채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엄격하게 식물성 식품만 섭취하는 ‘비건’, 유제품은 섭취하는 '락토 베지테리언', 유제품에 달걀까지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등 섭취하는 음식의 범위에 따라 나뉜다. 최근에는 엄격하게 채식을 실천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채식을 지향하며 간헐적으로 고기나 생선, 달걀, 유제품을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유연한(Flexible)과 채식주의자(Vegetarian)의 합성어)이 증가하고 있다.
점점 커지는 비건 식품 시장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며 시장을 선점하려고 노력 중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비건 시장에 뛰어든 풀무원은 ‘식물성 지향 식품 선도 기업’을 선언하고 두부면, 두부텐더, 만두 등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한 상품을 늘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론칭하고 비건 인증을 받은 100%식물성 ‘비비고 플랜테이블 왕교자’를 선보였다.
편의점 업계도 이런 흐름에 합세했다. CU는 채식 지향 식품, 대체육 사용식품에 대한 고객 니즈를 확인해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를 선보이며 비빔밥, 삼각김밥, 파스타 등 다양한 메뉴를 출시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채식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소비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간편식뿐만 아니라 외식 업계에도 비건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5월 국내 대표 식품기업들이 잇달아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풀무원은 ‘플랜튜드’, 농심은 ‘포리스트 키친’의 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비건 외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두 레스토랑 모두 비건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 채식을 지향하는 소비자, 가치소비를 실천하는 MZ세대 등 전체 소비자를 어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파파존스는 지난달 국내 업계 최초로 식물성 피자 2종을 출시했는데, 채 열흘도 안 돼 조기 품절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비건 식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증가하는 국내 채식 인구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비건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의 4%에 달하는 수치다. 여전히 북미나 유럽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2008년 15만 명에 그쳤던 것을 생각했을때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채식을 선호·지향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도 채식 관련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서울특별시를 비롯해 전국 광역·기초단체 7곳이 채식과 관련된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특별시는 2021년 3월 ‘채식환경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채식 환경 조성을 위한 국내 최초의 조례안 발의였다. 조례안 내용이 원론적 수준에 그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채식을 언급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계속해서 개선해나가야 될 것이다.
빠르게 증가하고 성장하는 국내 채식 인구와 산업을 위해 소비자와 기업, 더 나아가 지자체와 국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