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만남

류준열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케이스는 많다. 하지만 배우 류준열처럼 갑자기 얻은 인기를 ‘대중의 신뢰’라는 또 다른 차원의 애정과 지지로 확장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고난 재능, 끊임없이 노력해 쌓아온 실력, 자신만의 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유진 사진 NEW

언론시사회 때의 눈물, ‘국민 울보’라고요?

영화 <올빼미>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류준열은 “굵은 기둥이 되어가고 있다”는 선배 배우 유해진의 칭찬에 울컥한 듯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됐다. ‘국민 울보가 됐다’는 얘기와 함께 그 이야기를 꺼내자 류준열은 ‘눈물을 닦은 게 아니고 눈에 뭐가 들어간 것’이라는 농담으로 쑥스러움을 감춰보려 했다.

“(유)해진 선배님이 그 타이밍에 그런 얘기 하셔서… 제가 워낙 눈물을 쉽게 보이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떻게 울컥했어요.(웃음) 이번 작품은 마냥 웃으면서 깔깔대며 찍은 작품이 아니었어요. 선배님과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함께했죠. 농담보다는 툭툭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 계절은 가을이었고… 그런 느낌이 어렴풋이 생각나 그랬나 봐요.”

류준열은 유해진과 영화 <택시운전사>(2017), <봉오동 전투>(2019) 등을 함께했고, <올빼미>에서 세 번째 만났다. 유해진을 두고 류준열은 “신인일 때 만났고 배우를 하며 중간중간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한번씩 만났던 선배”라며 고마움과 애틋함을 전했다.

시나리오로 처음 접한 <올빼미>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류준열은 자신을 “게으르다”고 표현하면서 경수라는 캐릭터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본이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저질러버렸다”고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설명했다.

“<올빼미>에 들어갈 때 컨디션이 좋았어요. ‘프리 시즌’이라고 하나요? 운동선수가 큰 대회를 앞두고 운동하면서 몸을 맞춰놓았을 때 화려한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 이런 것도 해보자’ 하면서 작품에 들어갔고 막상 들어갔을 때 그런 게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였죠.”

맹인 침술사 역에 몰입,
실제 눈 초점 잡기 어려워져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다. 류준열은 극 중 맹인침술사 경수를 연기했다. 경수는 대외적으로는 ‘맹인’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주맹증(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인물. 류준열은 이 역할을 위해서 실제 시각장애 및 주맹증이 있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처음부터 ‘저는 사실 이렇습니다’ 하면서 가슴속 깊은 얘기를 꺼내지는 않으니까요. ‘준열 씨 작품 재밌게 봤어요’, ‘식사하실래요?’ 하는 이야기들을 했고 대부분 유쾌하시고 대화하는 걸 재밌어하셨어요.”

주맹증이 있는 경수의 캐릭터에 너무 몰입했던 걸까. 연기를 위해 항상 눈의 초점을 풀고 있어야 했던 류준열은 요즘에도 초점 잡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열연했던 시간이 일상에 남기고 간 흔적이다.

“요즘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초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려요. 일어나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곤 하는데 그때는 거의 초점이 안 잡힌 상태예요. 이런지 꽤 됐어요. 병원에 가서 여쭤봤더니 ‘시력에는 이상이 없으니 그냥 초점을 잡고 보세요’ 하시더라고요.(웃음)”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이 매일 일어나요

류준열은 과거 인터뷰에서 종종 “내가 왜 이 사람들이랑 밥을 먹지? 왜 여기서 어울리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TV나 스크린에서 보던 배우들이 이제는 자신의 선배이자 동료로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준열은 요즘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때때로 울컥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뷰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선배 배우 유해진의 칭찬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유도 실은 다 그런 감격스러움 때문이다.

“동료 배우들과 밥을 먹다가 문득 생각해요. 내가 이런 걸 상상한 적 없는데… 그게 이뤄지니 뭔가 상상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에요. 아니, 상상하지 않은 게 현실이 되는 느낌? 그래서 오히려 상상하면 두렵고 욕심이 생길 것 같고 허무할 것 같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는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이 매일 생기고 내일도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늘 그런 것을 기대하면서 자고 일어나요.”

그런 의미에서 류준열의 하루하루는 기적이다. 이 기적 같은 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그는 목표 지향적으로 고군분투하기보다 매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늘 그래왔듯이.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타입의 배우예요.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가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제가 생각한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실제 제 삶에서 보이는 순간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저 스스로 놀라고 있어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악착같이 간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기고 상처받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방식은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도 덜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