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보고서

그림 같은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

남해

남해에서 만나는 풍경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든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남해만의 그림을 만들며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마을과 시원하게 뻗은 대교와 전망대. 산속에 고즈넉히 자리한 산사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편집실 사진 및 자료 남해군청 문화관광

다도해 위를 걷는 듯한 설리 스카이워크

송정솔바람해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설리마을은 백사장이 하얀 눈을 닮았다 해서 설리(雪里)로 불린다. 설리는 사계절 모두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는다. 특히 손 내밀면 다도해 조망이 잡힐 것만 같고,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설리 스카이워크가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국내 최초 ‘비대칭형 캔틸레버 교량’으로 지어진 스카이워크는 약 36m 높이에 폭 4.5m, 총길이 79m의 구조물이다. 캔틸레버는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상태로 있는 보를 뜻하며, 설리 스카이워크는 43m로 전국에서 가장 긴 캔틸레버 구조물이다. 스카이워크 끝부분은 하단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찔한 해안 절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스카이워크 유리 한 장의 폭은 전국에서 가장 넓으며, 두께 12mm 유리판을 3중으로 접합해 안전성을 인정받았으니 안심하고 풍경을 즐겨도 좋다.

용문사

경치만큼 문화재로도 이름난 용문사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수많은 용 조각이 새겨진 용문사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석불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조선 인조 때의 시인 초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 책판 52권을 비롯해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 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용문사의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 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성철 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다랭이마을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다랭이마을

초록의 비탈진 계단 위로 긴 노동의 시간이 멈춘 듯한 다랭이마을은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 계단 680여 개 논이 펼쳐져 있다. 다랑이가 표준말로,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란 뜻인데 남해 사투리로 ‘다랭이’라고 부른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이기에 아직도 소와 쟁기가 필수다.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은 2005년 1월 3일 국가 명승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좁고 긴 논들은 계단처럼 이어져 있고, 남해 최고의 산행길로 사랑받는 응봉산과 설흘산을 향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에 감사하며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았던 선조들의 억척스러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마을

이국적인 풍광과 서사가 있는 독일마을

독일마을은 1997년 한국 최초로 사계절 푸른 잔디구장을 남해군에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잔디를 수입한 독일 노드프리슬란트군과 자매결연 과정에서 도움을 준 베를린과 함부르크 교민들이 한국 정부에 독일마을을 조성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남해군수가 외교부를 설득해 독일 순회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고 50여 명에게서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독일 교민 대표들이 선택한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 약 90,000㎡ 부지에 50세대 규모의 택지조성공사를 시작했고 2002년부터 택지를 분양받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가져와 전통 독일 양식으로 집을 짓기 시작한 게 시초였다. 이렇게 조성된 이국적 풍광과 서사가 가득한 독일마을은 그 후 드라마 <환상의 커플>, 영화 <국제시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와 배경이 되었으며, 2020년 11월 기준 44가구 주민 77명이 거주하고 있다.

남해대교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 남해대교

총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개통식에 약 10만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지방자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개통식으로 기록됐다. 1968년 현대건설이 총괄해 착공한 후 5년 1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선보인 남해대교가 개통되자 남해군은 배가 아닌 육로로 통행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첫 통로가 되어준 남해대교는 남해 사람들에겐 ‘출발’의 의미를 지닌 다리다. 객지로 떠날 때도, 다시 뭍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이 대교가 주는 안도감과 포근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만드는 설천면 노량-문항 일대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사랑받고 있으며 7년 임진왜란을 종식한 승리의 전쟁 노량해전을 기리는 거북선과 이순신 충렬사가 손에 잡힐 듯한 역사적 다리로도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