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만남

한계 없는 남자, 이정재

2022년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배우를 꼽는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프라임타임 에미상 등 미국의 굵직한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는 연기와 연출을 오가며 한계 없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정유진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헌트> 연출? 아무도 안 해줘서 나섰죠

여름 성수기 시즌 개봉한 영화 <헌트>는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다. 첫 연출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력이 돋보였던 <헌트>는 제75회 프랑스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받아 호평을 들었을 뿐 아니라 지난 8월에 개봉해 한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으며, 42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배우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을 그가 왜 연출에 도전하게 됐을까. 이정재는 섭섭함(?)이 묻은 표정으로 “아무도 안 해주니까 했다, 좀 해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많은 감독님이 고사하셨어요. 그래도 시도는 해볼 만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이런 방향으로 가자는 마음을 담아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편을 완성하고 수정고를 쓰는 기간이 약 4년 정도였는데 그 사이 저는 7개 작품을 했어요.”

‘남산’이라는 원제로 시작한 <헌트>는 이정재가 제작과 각본, 연출, 주연까지 1인 4역을 한 작품이다. 처음 이정재는 원작자로부터 영화 판권을 산 뒤 제작에 착수했으나 연출자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직접 시나리오까지 써가며 작품을 포기하지 않은 덕에 메가폰을 잡게 됐고, 절친 정우성을 ‘사고초려’ 끝에 캐스팅해 공동 주연을 맡았다. 투지와 집념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우성과 23년 만의 호흡?
‘청담부부’ 벗어나기에 초점

정우성이 <헌트>를 네 번이나 거절했다는 사실은 영화를 개봉하기 전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널리 알려졌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우리는 사심으로 일하지 않아요. 그래서 4년 동안 1년에 한 번 (정)우성 씨가 거절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거였죠.(웃음) 영화계에서 <태양은 없다>(1999) 이후 저와 우성 씨가 함께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기대가 많았어요. 둘이 같이 나오는 작품은 흥행성이 있는게 아니면 작품성이 있다는 인정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죠. 그런 기대치를 뛰어넘어야 하고, 그게 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우성 씨가 알았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이정재와 정우성은 널리 알려진 ‘절친’이다. 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을 두고 팬들은 ‘청담부부’라는 귀여운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헌트>는 두 사람이 무려 23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하는 작품이라 많은 이의 기대를 자아냈다. 20대 시절, 청춘의 얼굴을 보여줬던 이들은 숨 막히는 액션 누아르 영화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중후한 남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정우성은 4년간 <헌트>의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결국 연출을 맡아 주연까지 해내고 만 절친을 묵묵히 뒤에서 응원했다. 그는 <헌트> 관련 인터뷰에서 이정재를 두고 “연출을 하며 점점 야위어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정)우성 씨가 워낙에 사람을 배려하는 스타일이에요. 일단 시나리오를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걸 계속 옆에서 지켜본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같이합시다’ 했을 때 이 부분은 수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주셨고 의견을 반영한 부분도 있고, 제가 우성 씨에게 설명해 설득한 부분도 있었죠.”

다정한 ‘청담부부’는 지난 9월 각자의 연출작으로 캐나다에서 열린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함께 참석했다.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정우성은 자신의 연출작 <보호자>로, 이정재는 <헌트>로 영화제를 방문했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져…놀라운 기쁨

<헌트>는 호평이 많았던 작품이다. 특히나 연출력에 대한 칭찬이 많다. 하지만 이정재는 애써 칭찬을 피하며, 겸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아직 그래도 정우성, 이정재를 기다려주시는 분이 많구나 싶었다고 한다.

‘감독 이정재’와 ‘배우 이정재’ 중 하나를 골라달라는 말에 이정재는 고개를 저으며 “그냥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수십 번 시나리오를 고쳐 쓰고, 여러 사람을 섭외하고, 연출이 끝난 후에도 편집에 편집을 거듭하며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의 대답이라 의미심장했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요. 연출에 더 흥미를 갖고 있다면 연출이 어렵게 느껴지고 잘할 때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아직은 연기가 조금 더 어려운 것 같아요.”

2022년은 이정재가 맞이한 절정의 전성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배우를 넘어 세계의 배우가 된 그는 디즈니 + <스타워즈> 시리즈 중 하나인 <어콜라이트>의 남자주인공으로 합류하며 명성을 이어간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저에게 벌어지고 있어요.(웃음)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이렇게 성공할지 그 누구도 몰랐죠. 해외 어워즈에서 노미네이트 되고 수상하는 것이 한국 영화, 한국 콘텐츠를 알린다는 점에서 너무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그것을 저와 동료들이 함께하는 것이 놀라운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