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만남

‘성장캐’ 김태리는 무럭무럭

배우 김태리가 있는 곳은 언제나 밝은 에너지로 넘친다. 거침없이 솔직한 말투와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고 마는 해맑은 웃음소리. 김태리의 이처럼 건강한 면모 이면에는 남들이 미처 헤아리기 어려웠던 고민과 성장, 성취가 있었다. 자신이 연기해온 강하고 선한 캐릭터들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는 이 ‘청춘스타’를 만나 새 영화 <외계+인>과 그간 겪어낸 성장통에 대해 들었다.

정유진 사진 매니지먼트mmm

변화무쌍 김태리, <외계+인>으로 돌아오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같은 느낌이었어요. 워터마크에 ‘김태리’ 세글자가 찍혀 있는데 장을 넘겨도 김태리, 또 넘겨도 김태리였어요. 찡하고 행복했죠.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최동훈 감독으로부터 영화 <외계+인>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전설적인 <타짜>(2006)를 비롯해 <도둑들>(2012), <암살>(2015) 같은 천만 영화들까지. 봉준호, 박찬욱 감독 못지않게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흥행 감독의 ‘러브콜’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고려와 현대를 오가는 판타지 SF 영화 <외계+인> 1부에서 김태리는 천둥 쏘는 처자 이안을 연기했다.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 분)과 함께 영물인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어려웠어요. 굉장히 고민하고 연기했거든요. 이안이의 전사는 1부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는데 캐릭터가 살아 있어야 했어요. 아역 배우가 연기한 어린 이안이의 성격과 제가 연기한 이안이의 성격이 매치돼야 했죠.”

김태리는 이안이 ‘너무 멋진’ 캐릭터라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최동훈 감독에게 “멋있는 거 그만하고 싶다”고 얘기까지 했다고. 실제 김태리는 최 감독과 함께 멋진 이안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들을 찾았고, 이를 영화 속에 반영했다.

“무륵이가 나올 때마다 행복했어요. (멋진 느낌을) 다 깨주니까. (류)준열 오빠에게 ‘쌍따봉’을 많이 날렸죠. 요즘엔 연기적으로 너무 자연스러워서 있는지 없는지 흘러가는 것보다는 눈에 띄게 거슬리더라도 차고 넘쳐서 에너지가 폭발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김태리의 성장통, ‘스물다섯 스물하나’

김태리에게 최우수연기상(백상예술대상)을 안겨준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올해 초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까지 열광하게 한 작품이었다. 언제나 당차고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드라마 속 주인공 나희도는 김태리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정작 김태리는 나희도를 연기하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하면서 너무 많은 실패를 했어요. 진짜 더는 실패가 없겠다 싶을 정도였죠. 그런 실패들 끝에 너무 운이 좋게 작품이 성공해서 치유의 시간이 짧았어요. 다시 (정서적으로) 올라오는 과정 속에서 이전과 다른 제가 됐어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김태리가 된 거예요. 새로운 지점에 도달한 느낌이었죠.”

이후 인생의 챕터 2가 시작됐다. 데뷔작인 <아가씨>도, 히트작인 <미스터 션샤인>도 아닌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김태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이었다.

“예전에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저 사람에게 저렇게 흔들렸어요. 이제는 저라는 가지의 모양새가 정확하게 보여요. 희도와 저는 너무 닮은 사람이에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분석할 때 이런 말을 적기도 할 정도였어요. ‘놀랍도록 나와 모든 면이 같다.’ 그렇지만 다른 점도 있었어요. 희도는 ‘나 이거 부끄러운데’ 하고 자신의 속을 꺼내 보일 수 있지만, 이전의 저는 자격지심도 질투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확신할 수 있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하기 전 김태리는 나희도에게 밀리는 애였는데 지금은 김태리가 나희도를 밀어버릴 수 있어요.”

못생기기도, 예쁘기도 한 멋있는 김태리

<외계+인>을 준비하면서 김태리는 기계체조를 배웠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하면서는 펜싱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배역을 위한 기술 말고도 쉬는 시간 틈틈이 목공과 재봉, 제빵 기술까지 섭렵하는 ‘배움 중독자’다.

“저는 뭔가를 한번 배우면 휴대폰이 터져요. 스스로의 성장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폴더에 쭉 저장하거든요. 우울할 때 휴대폰 속 영상들을 보면 리프레시가 돼요. 깔깔깔 웃으면서 뭔가를 배우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체조소녀 김태리 영상이 346개, 국가대표 나희도가 1,036개 있네요. 다음 건 2,000개 정도 찍지 않을까요?”

벌써 데뷔 7년 차. 김태리만큼 기복이 없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2016년 영화 <아가씨>로 데뷔한 이래 계속해 성공 가도만 달려왔다. 하지만 부담감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장통 뒤 갖추게 된 성숙한 태도다.

“영화는 협업이고 저 혼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김태리가 있다고 영화가 잘되지도 못되지도 않죠.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고 그건 타이밍이에요. 우주의 기운이 우리 작품을 도왔을 때 성공이 있는 거라 믿어요.”

김태리는 멋짐이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힘이라고 했다.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특출한 것은 베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 김태리’는 멋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