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바로 알기

감정이 몸을 움직인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손발을 꼼지락거리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내 엄마 젖을 찾습니다. 이는 호흡과 감정, 신체활동, 먹는 것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임을 말합니다. 움직이려면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먹고 움직이도록 인간의 뇌에 프린팅되어 태어나는 것입니다. 먹고 움직이는 것, 이 두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건강해집니다. 그래야 웃을 수 있는 여유와 행복감, 즉 편안한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박민선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예부터 ‘등 따습고 배부르면 임금님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불러 육체적으로 위와 장이 채워져야 포만감이 느껴지고 뇌의 감정 중추에 전해져 감정적으로 편안함을 인지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 젊었을 때는 장기가 건강하고 몸에 힘이 있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배고프고 힘이 떨어지면 작은 자극에도 인상 쓰거나 짜증을 내게 됩니다. 또 몸에 필요한 것이 채워지고 포만감을 느끼게 되면 콧노래가 나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인간은 신체적·정신적 욕구가 채워질 때 즐거운 감정, 행복감이 생기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정을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체력을 잘 유지하려면 먹고 움직이는 것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감정이 일상을 지배

100여 년 전만 해도 몸을 움직여야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어, 항상 움직임에 비해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먹고 움직이는 것이 주변 환경에 따라 결정되었기에 스스로 의지에 따라 먹고 움직이는 것을 조절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먹을 것은 풍부하지만,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움직임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운동하거나 몸을 움직일 시간적 여유는 있어, 먹고 움직이는 것을 스스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먹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은 비만하기 쉽고, 특정 음식을 좋아해 편식하는 경향이 있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당뇨가 생기기 쉽습니다. 즉, 과거와 달리 감정이 먹고 움직이는 것과 생활을 모두 관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조금씩 움직이는 생활을 습관화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특별한 외부 스트레스 요인이 없고, 걱정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불안하고 화를 참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체력이 바닥나지 않았는지 체크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이유 없이 짜증이 나거나 화를 참지 못하거나 우울해지는 가장 흔한 원인은 체력이 바닥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암, 심혈관질환 등으로 일시적으로 쇠약해진 상태이거나 노화에 의해 체력이 떨어지면 우울증이 생길 위험이 더 증가합니다.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도 나이 들어 지속해서 체력이 떨어지거나, 젊은 사람도 과로하거나 수면과 휴식이 지나치게 부족하고 불규칙해 힘이 떨어질 때는 우울과 불안, 분노조절장애 등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따라서 감정을 잘 다스리고 질병에서 벗어나려면 항상 힘을 여유 있게 비축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먹어서 힘을 비축하고 몸을 움직여 소모하는 활동 간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체 반응을 가져오는 스트레스

신체적·정신적인 면에서 몸에 필요한 것이 채워지지 않아 편안하지 않고 갈등하게 되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하고, 흔히 이런 상태를 ‘스트레스 받는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심리적·신체적 반응을 가져오는 스트레스 자극은 크게 외부 요인, 내부 요인 및 신체 생리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외부 요인으로는 전쟁, 테러, 자연재해로 인한 트라우마 등 한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명백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 이후의 스트레스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고 하며 실제 일상에서 경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에 따른 스트레스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일과 성취의 문제,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주로 포함됩니다. 실제 임상에서도 암 환자 중 상당수가 암 진단 이전에 생활상의 큰 스트레스를 겪은 경우가 있고, 필자도 환자를 진료할 때 송사, 배우자나 가족의 사망, 질병 등 생활상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시기 이후 1~2년 동안은 건강검진을 좀 더 규칙적으로 자주 하도록 권유합니다. 스트레스 자극 중 두 번째인 내부 요인으로는 성격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들 수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A형 성격으로, 경쟁적 성격과 조바심, 성공 지향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몸의 요구는 무시하는 성향도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취약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혈압으로 약물치료 중이던 53세 관리직 남성의 경우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 환자는 최근 스트레스가 심해 화를 참을 수 없고, 혈압이 수시로 오르내린다고 호소했습니다. 혈압약과 더불어 근육 이완과 안정을 주는 항불안제를 처방했는데, 최근 안정제를 자주 먹고 잠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3개월 사이에 체중이 5kg, 약 7% 정도 증가해 혈압의 변동폭이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주로 직장에서 아랫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원하는 만큼 성취하지 못했을 때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사로부터 과거의 일로 인해 페널티를 받아 분노 조절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감으로 마음을 이완

성취욕이 강한 경우, 쉬지 않고 일에 에너지를 쏟아 체력이 바닥을 보이는 순간에 이르거나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화나 분노 조절이 어려운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을까요? 주변에 자신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어,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꾸 눌러 체력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장기가 조금씩 손상돼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화가 나거나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스트레스호르몬과 교감신경계가 자극을 받아 혈압이 올라갑니다. 또 온몸의 근육과 혈관이 수축되어 우리 몸속은 마치 교통사고로 인해 도로가 막힌 것처럼 각 장기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즉, 분노는 화를 남에게 쏟아내기 전에 그 에너지가 자신의 혈관을 막고 온몸을 조여 모든 장기를 손상시키므로 가장 짧은 시간에 질병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로 만듭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울 정도로 성취욕이 강해 심한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 분들은 마음의 앙금을 규칙적으로 풀어내고 이완할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감정은 운동, 영양과 달리 실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을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은 일 끝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힘이 납니다.

신이 인간에게 보고(視), 만지고(觸), 맛보며(味), 냄새 맡고(嗅), 듣는(聽) 오감을 준 이유는 아마도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이 건강하게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감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받아들이고 신이 준 선물인 오감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어봅니다. 음악을 듣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계획을 세우거나, 여행을 계획하고, 촉감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도 감정 조절이 어렵다면 전문의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공감을 받거나, 객관적인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반은 후련해지는 것이 마음의 병의 특징이므로, 누군가를 찾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길이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는 감정을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뿐 아니라 생존을 결정하는 열쇠임을 의미합니다. 선천적으로 감정을 잘 조절하도록 타고났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력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이란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도 즐거운 일을 계획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꿔보세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