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만남

따뜻한 능력자
유연석

‘응답하라 1994’와 ‘슬의생’을 거치며, 유연석은 어느새 여성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그가 보여주는 자상하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은 한국과 프랑스의 합작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정유진 사진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프랑스 감독이 선택한 배우, 유연석

유연석은 3월에 개봉한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의 주인공 박진호 역할로 극장을 찾았다. 범죄 영화인 ‘배니싱: 미제사건’은 서울에서 변사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박진호와 프랑스 출신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작품. 유연석은 한국을 방문한 드니 데르쿠르 감독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반해 출연을 결정했다.

“가죽 재킷을 입고 다닌다든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다든지 하는, 늘 보던 느낌의 형사가 아니었어요. 형사의 꿈을 키워온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통해 우연히 형사가 됐다는 전사가 있는 캐릭터라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배니싱: 미제사건’을 촬영할 당시는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에 여러 제약이 많았고, 낯선 나라에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 프랑스 감독과 배우들의 고충이 컸다. 그런 그들을 돕기 위해 유연석은 큰 노력을 기울였다. 따뜻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행보였다.

“누구 한 명 코로나19에 걸리면 촬영이 중단되던 시기에요. 촬영이 끝나면 늘 호텔에만 있어야 했죠. 촬영 중반부에 저는 뮤지컬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과 올가를 초대해 제가 출연 중인 뮤지컬을 같이 봤어요. 끝나고 가볍게 칵테일도 한잔하고요. 두 사람이 너무 좋아했어요. 힐링이 됐대요.”

영어와 불어, 일본어, 스페인어까지

K콘텐츠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기다. 합작영화에 출연한 것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유연석은 “해외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디딤돌이 돼줄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해외 스태프들과 작업의 기회가 있으면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새해전야’에서도 아르헨티나 현지 스태프들과 작업할 때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가다 보니 동질감을 많이 느꼈죠. 더 욕심이 생겨요.”

유연석은 글로벌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준비된 인재다. 영화 속에서 그는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몇 마디 하지 않지만 불어까지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뿐 아니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는 일본어, 영화 ‘새해전야’(2020)에서는 스페인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외국어 연기에 특별히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뭔가 빨리 습득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시간과 기회만 있다면 어떤 언어가 됐든 열심히 해볼 수 있어요,”

유연석은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남다른 호기심이 그를 늘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사진을 찍고 가구를 만드는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연예계에서 잘 알려진 ‘취미 부자’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캠핑이라는 취미가 새롭게 생겼어요. 작년 여름에는 유기견 리타를 입양해 반려견과의 생활도 시작하게 됐죠. 요즘엔 반려견 돌보는 일이 취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호기심이 어디 취미에만 한정되랴. 유연석은 방송이나 영화뿐 아니라 공연에도 열정을 불태우는 배우 중 하나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지 않을 때는 꾸준히 뮤지컬에 출연해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가장 최근에 출연했던 뮤지컬은 지난 3월에 공연한 ‘젠틀맨스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이다.

“무대는 한두 달 연습한 대사여도 공연할 때마다 계속해 연습하고 객석의 반응을 보게 돼요. 그게 많은 공부가 되기 때문에 꾸준히 무대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요즘에는 아직 해보지 못한 연극 무대에도 관심이 많이 가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응사’ 칠봉이와 ‘슬의생’ 정원이

영화 ‘올드보이’(2003) 속 유지태의 아역으로 데뷔한 후 벌써 20년이 흘렀다. 출세작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였다. ‘응사’라 불렸던 이 작품에서 유연석은 따뜻하고 자상한 서울 남자 칠봉이를 연기하며 많은 여성 팬을 모았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들은 대부분 유연석 특유의 차분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와 연결되는 따뜻한 인물들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안정원 캐릭터가 그랬다.

“특별히 따뜻한 캐릭터에 끌리는 건 아니에요. 그저 그런 제안이 많은 것이죠. 영화 ‘강철비 2: 정상회담’에 출연했던 것은 조금 다른 캐릭터들을 찾아가기 위함이었죠. 벌써 20년이라니요. 만약에 지금부터 작품을 더는 못하게 된다고 한다면, ‘여한이 없냐’고 자문해볼 때 아쉬움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훗날, 10년쯤 뒤에 다시 이 질문을 해주셨을 때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정말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해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 끝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다시 한번 유연석의 매력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넌지시 나온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3에 대한 질문에 유연석은 “하게 되면 당연히 참여한다”면서도 제작 여부에 대해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현답을 내놓았다.

“‘슬의생’에 인턴, 레지던트로 나왔던 배우들이 모두 주연급으로 다른 작품에서 작업하고 계세요. 그분들을 다 모아 시즌3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걸요? 그래도 다들 감독님을 조르고 있어요. 시즌3 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