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에게 ‘미녀 배우’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다. ‘미녀’라는 말은 주저 없이 자기만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온 여배우의 커리어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의미가 좁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지옥>으로 또 한 번 스펙트럼을 넓힌 김현주와 만나 ‘도전의 가치’와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글 정유진 사진 넷플릭스
<지옥> 전 세계 1위? 기대 이상이에요
김현주는 <지옥>에서 민혜진 변호사를 연기했다. 총 6부작으로 전반 3부, 후반 3부가 두 개의 다른 시간대로 나뉘어 전개되는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김현주는 유일하게 전체 에피소드를 아우르는 중심인물이다. 지난 11월 19일 공개돼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TV 프로그램 1위에 올랐던 <지옥>은 <오징어 게임>을 잇는 또 하나의 K-콘텐츠 성공작이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늘 있는 일이지만, 그게 넷플릭스 안에서는 어느 정도 일일지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웠어요. 지금도 세계 1위라는 게 실질적으로 체감은 잘 안 되는데…. 기대 이상인 것 같아요.(웃음)”
김현주는 <지옥>을 통해 세계적인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와 처음 작업을 했다. 넷플릭스는 해외 기반의 플랫폼으로, 한국 시청자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선보인다. 그는 이런 플랫폼의 특성에 대해 부담보다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해외에 있는 분들은 저에 대한 프레임 혹은 고정적인 이미지가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고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좋았죠. 한국에서는 그간 제가 해온 것들,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들이 프레임화한 것 같거든요. 스스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전하게 연기하곤 했는데 이번에 그런 것들을 떨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자유롭고 편했어요.”
저는 원래 여성 팬이 더 많아요
김현주가 꺼낸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다소 의외였다. ‘연기파’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온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오래전부터 자기도 모르게 갇히게 된 틀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걸 깨고 더 나아가는 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하나의 과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이 꽤 길었죠. 또 개인적으로는 배우라면 어떤 것이든 깨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변화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스스로 부채감 비슷한 것을 만들어놓고, ‘어떻게 하지?’ 하면서 겁을 내온 시기들이죠.”
이런 어려움은 나이가 들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해소됐다. 틀을 깨고 새로운 역할들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최근 출연한 <왓쳐>(2019)와 <언더커버>(2021) 같은 드라마들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었고, 이는 <지옥>을 선택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지옥>에서 맡은 역할로 여성 팬이 많아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원래 여성 팬이 더 많다”는 자신감 넘치는 답이 돌아와 웃음을 줬다.
“전 원래 여성 팬이 더 많아요. 남성 팬이 거의 없거든요. 그게 좀 신기할 정도인데…(웃음) 플랫폼 특성상 아무래도 젊은 세대 여성분들이 드라마를 많이 봐주셨기 때문에 여성 팬도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을 떠나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작품을 통해 늘어난 것은 감사할 일이죠.”
배우 그만둘 거 아니면 도전해보자!
배우 그만둘 거 아니면 도전해보자!최근 쌓아온 프로필은 이전까지 쌓아온 것들과 전혀 다른 색깔을 띤다. 이전에는 주로 멜로나 가족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의 여주인 노릇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트렌디한 장르물에서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변화는 도전의 결과물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한다고 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요. 만족을 위해 가는 과정이죠. 그간 변화나 도전을 시도하는 것을 어려워 했기 때문에 ‘늘 하던 걸 잘하자’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어요. 그렇지만 오랜 시간 (변화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다 보니까 ‘그만둘게 아니면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런 고민이 작품 선택에도 나타났죠.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열심히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는 배우라는 느낌이 전달되기를 바라요.”
여배우의 입지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현주는 이를 극복해낸 선배들을 보고 배웠다며,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한계를 뛰어넘어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선배 대에 멋진 배우분들이 계셨기에 저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왓쳐> 때 한석규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선배님의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분과 연기하는 것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그러고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 그런 배우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