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구입했거나 사용했던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리셀마켓(Resell Market)’이라고 한다. 리셀마켓은 엄밀히 말하면 중고마켓(Used Market 혹은 Second-hand Market)의 범주에 속하는데, 통상적으로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둘 다 신상품을 사서 되파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중고마켓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신상품보다 가격이 싸지만, 리셀마켓에서는 오히려 더 비싸다.
글 구승준 번역가·칼럼니스트
중고마켓을 예로 들어보자. 대략 50만 원을 들여서 ‘파나소닉 LX10’ 디지털카메라를 샀는데, 생각보다 쓸 일이 없어서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에 내놓으면 제품 상태에 따라 대략 25만~4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또 5만 원 주고 구입한 ‘할리스’ 캠핑 의자도 4만 원 이상을 받긴 어렵다.
그러나 리셀마켓은 다르다. 2019년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함께 만들었던 한정판 스니커즈는 정가가 21만 9000원이지만, 1년만에 리셀마켓에서 1,300만 원대에 팔렸고, 현재 시세는 2,000만 원대에 이른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엄’은 2017년 백화점 정가가 598만 원이었는데, 2021년 현재 가격은 거의 1,000만 원에 근접했다.
리셀마켓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매우 희귀하거나 한정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출시 당시 정가에는 사기 어렵다. 예를 들어 현재 2,500만 원 이상에 팔리는 ‘롤렉스 서브마리너 스타벅스’ 시계는 정가가 1,165만 원이지만, 매장에 가도 이런 귀한 시계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롤렉스 매장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없기에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 입장했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나가야 한다.
시계 전문 리셀러들은 시계를 사기 위해 몇 시간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매장에 입장해 원하는 시계가 없으면 다시 번호표를 뽑는다. 한 달 내내 이런 지루한 과정을 참고 반복해도 원하는 시계를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나이키는 한 술 더 뜬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려면 기다려도 살 수 없고, 추첨에서 당첨되어야만 한다. 운이 좋아야 ‘득템’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기회비용 또한 가치로 환산된다. 리셀마켓에서 웃돈을 주는 행위는 남의 ‘운’을 돈으로 사는 셈이다.
리셀마켓에서는 주로 구찌,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 명품 가방이나 의류, 파텍필립, 롤렉스, 오메가 등 명품 시계가 거래된다. 그 외 한정판 의류, 액세서리, 레고, 피규어 등 많은 품목이 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인기를 끄는 품목은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브랜드의 스니커즈(운동화)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아예 스니커즈만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플랫폼들이 있다.
대기업, 백화점도 뛰어들고 있는
스니커즈 시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한 곳은 네이버가 만든 크림(Kream)과 무신사가 만든 솔드아웃(Soldout)이다. IT 기업 네이버는 지난해 3월 자회사 스노우를 통해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인 크림을 시작했다. 올해 2월에는 스페인의 리셀 플랫폼 ‘왈라팝’에 1,55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태국 플랫폼 사솜(Sasom), 일본 리셀 사업자 ‘소다’에도 지분을 투자했다. 또 올해 8월 나매인 지분 100%를 80억 원에 매입했다. 나매인은 2004년부터 스니커즈 커뮤니티인 나이키 마니아를 운영해온 법인이다. 네이버가 리셀마켓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작년 여름에 온라인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한 솔드아웃은 올해 9월 플랫폼을 개편해 새로 단장했다. 무신사 측에서는 “스니커즈 리셀 시장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무신사 애플리케이션(앱)과 별도로 운영되는 솔드아웃을 출범했는데, 1년 만에 새로 단장한 것이다. 품목을 늘리고 편의성을 개선했다”며 강한 마케팅 의지를 표명했다.
스니커즈 플랫폼으로는 글로벌 1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스탁엑스(stockX)도 한국에 상륙했다. 200여 개국의 셀러 100만 명이 등록돼 있고, 12만 개 넘는 제품을 판매하는 거대한 플랫폼이라 예전에는 한국의 스니커즈 마니아들이 해외직구로 이용했다.
스니커즈 마니아들에게는 성지나 마찬가지인데, 이 회사가 한국 시장을 높게 평가하여 올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9월부터 한국어 사이트를 공식 개설했다. 중위권에 머물고 있는 프로그, 리플, BGZT랩, 아웃오브스탁도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기업 외 백화점들도 리셀 매장을 내고 있다. 여의도에 있는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은 지하 2층에 스니커즈 리셀 매장 ‘BGZT 랩’과 명품 시계 리셀 매장 ‘용정콜렉션’을 열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2월 영등포점 1층에 국내 최초의 한정판 스니커즈 거래소 ‘아웃오브스탁’을 선보였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지난 4월 압구정 명품관에 리셀슈즈 편집매장 ‘스태디움굿즈’를 열었다.
기업들이 리셀마켓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몸집이 더 커졌을 때 뛰어들면 늦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중고의류 유통업체 스레드업은 지난해 280억 달러(약 33조 원) 수준이었던 리셀 시장 규모가 2025년에 640억 달러(약 75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왜 리셀 제품에 열광하는가?
통계 자료마다 약간은 다르지만, 리셀 시장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20~30대라는 건 공통적이다. 이른바 MZ세대에게 리셀 제품이 왜 인기를 끄는지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쓰는 표현으로 ‘간지가 나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경험을 중시하고, 상품을 소비하더라도 기왕이면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것을 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추고 새로운 모델에 대한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를 소유했다가 되팔고 나서 그다음 모델을 체험하고자 한다. MZ세대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미닝아웃(meaning out)’을 하는 데도 익숙하다. 미닝아웃이란 자신의 소비행위를 통해 개인의 가치관, 취향, 성향 등을 드러냄을 뜻한다.
오늘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먹더라도 ‘나이키 에어포스1 패러노이즈’를 신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이런 소비성향은 사치와 좀 다르다. MZ세대는 싼 상품을 살 때도 의미 없는 소비를 하지 않으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면 기꺼이 돈을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리셀 제품들의 가격이 중고로 팔더라도 많이 빠지지 않으며, 심지어 재테크까지 할 수 있다는 점도 리셀마켓이 뜨는 이유다. 실제로 주식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리셀 시장에서 재테크를 하는 ‘슈테크(슈즈+재테크)족’이나 ‘샤테크(명품+재테크)’족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합쳐서 몇천만~몇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나 명품 가방에 투자하여 현물 자산의 소유권을 조각처럼 나눠서 투자하는 상품도 있다. 현물조각투자 플랫폼 피스(Piece)는 명품 신상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최소 10만 원부터 최대 2,000만 원까지 투자할 수 있으며, 6개월 안에 상품을 매각하여 투자원금을 회수하고 원금과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 목표 수익률은 25%라고 한다. 이런 투자상품은 대략 30분 이내에 마감된다.
리셀테크로 돈 벌 수 있을까?
“한 달에 몇천만 원 벌었어요”라는 전문 리셀러들이 있는데, 유튜브를 하더라도 한 달에 몇억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년째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버는 리셀러들만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리셀러만 되면 돈을 버는 황금어장인 듯한 착시현상이 있다. 하지만 실상 리셀마켓은 고난의 길이다. 웬만한 희귀품이나 한정판이 아니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지 않는다. 명품백의 경우 희귀한 한정판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오히려 가격이 내려간다. 명품 시계도 일부 라인업을 제외하면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리셀 명품 거래가 활발한 캉카스백화점이나 구구스에서 명품을 팔아도 대부분은 신상품보다 낮은 가격을 받는다. 또 명품 리셀러가 되려면 초기투자금이 적어도 수천만 원은 필요하다. 팔기도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는 진품을 팔아도 가품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게 여의치 않다.
그럼 신품을 사서 되팔면 되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그렇게 쉬우면 웃돈을 주고 제품을 사는 리셀마켓이 왜 생겼겠는가. 명품 리셀마켓에 비해 스니커즈 리셀마켓이 커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초기 자본금이 많이 들지 않고,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많으며 거래도 활발하기 때문이다.
스니커즈 리셀마켓은 주식시장과 비슷하다.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인 스탁엑스는 이런 속성을 반영하여 주식과 같이 신발을 사고파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는 사람이 많으면 신발 가격이 오르고, 적으면 신발 가격이 내린다. 리셀마켓에서 가장 복병이자 암초는 가품, 이른바 ‘짝퉁’이다. 온라인에는 스니커즈나 명품 가방의 가품이 난무하는데, 이를 걸러내기가 어렵다. 국내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크림이나 솔드아웃에서도 진품 인증을 한다는 점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품으로 판정한 스니커즈가 사실은 가품이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리셀테크는 요원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스니커즈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가능하다. 스니커즈로 재테크를 하려면 특정 브랜드의 족보나 이력을 꿰고 있어야 하고, 늘 신상품 출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브랜드의 소셜미디어는 물론 각 매장의 정보에도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재테크로만 접근하면 이런 행위가 고역이지만 원하는 스니커즈를 손에 넣었을 때 맛보는 짜릿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노력은 즐거운 행위로 바뀔 것이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만한 노력을 하려면 차라리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게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다. 리셀마켓에서는 즐기는 자에게 돈이 따라온다.